즐기면서 이기는 아이들 ‘금빛 코리아’

입력 2010-02-18 18:34


모태범(21) 이상화(21) 이정수(21) 이승훈(22)…. 겁 없는 젊은이들의 겁 없는 금빛 질주가 펼쳐지고 있다. 한국 빙상 역사를 넘어 세계 빙상 역사를 고쳐 쓰고 있는 이들의 폭발적 질주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러나 경기장 안팎에서 비춰지는 이들의 얼굴엔 비장함보다는 장난기가 묻어나온다. 올림픽이라는 부담감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왜일까.

전문가들은 이들이 가진 여유로움과 긍정의 에너지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500m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모 선수는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경기장에서 태극기를 몸에 감은 채 춤을 췄다. 시상대에서 눈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냥 웃게 되던데요”라고 말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박길성 교수는 18일 “이번 올림픽에서 젊은 선수들이 잘하고 있는 것은 기존 세대들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부담감이 없기 때문”이라며 “그만큼 한국사회가 유연하게 변했다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메달을 따지 못하거나 실수를 하면 좌절하기보다는 툭툭 털고 일어선다. 쇼트트랙 1500m에서 우리 선수끼리 충돌해 메달을 놓친 성시백(23) 선수는 인터넷 미니홈피를 통해 “지인, 팬,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남은 시합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걱정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서울대 사회교육과 박성혁 교수는 이 같은 긍정의 에너지에 주목한다. 박 교수는 “이들이 메달을 따는 장면을 보면 ‘노력과 성취를 모두 즐기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며 “자아실현을 위해 스스로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목표의식과 근성이 뚜렷한 것도 특징이다. 훈련 스케줄을 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다 소화해내는 악바리들이다. 500m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는 혹독한 훈련을 거쳐 ‘철벅지’라고 불리는 22인치의 허벅지를 만들었다. 모 선수는 미니홈피에 “성공이라는 못을 박으려면 끈질김이라는 망치가 필요하다”고 적었다. 아시아 선수 사상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에서 은메달을 딴 이승훈 선수는 지난해 4월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새로운 목표에 도전해 결실을 맺었다. 쇼트트랙 1500m 금메달리스트인 이정수 선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신의 선택으로 운동을 시작해 정상에 우뚝 섰다.

성공회대 사회학과 허상수 교수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유쾌함에서 나오는 힘”이라고 이들의 성공 비결을 요약했다. 이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태어난 ‘88 올림픽 세대’라는 공통점도 있다. 발전된 한국 사회에서 밝게 자란 덕에 국제대회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당돌하고 거침없는 세대다. 스포츠뿐 아니라 학문과 문화예술의 영역에서도 변화가 진행 중이다. 곧 다른 분야에서도 무서운 아이들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이종원 박사는 “선수들이 메달을 딴 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인터넷을 통한 결집력이 잘 드러난다”며 “자유롭지만 공동체 의식이 높은 세대”라고 지적했다.

엄기영 전웅빈 이경원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