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동수] 신세대 선수들의 유쾌한 반란

입력 2010-02-18 18:31


“올림픽 쾌거는 신세대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들을 격려하는 계기가 되었다”

밴쿠버에서의 금빛 낭보들이 국민들을 유쾌 통쾌 상쾌하게 만들고 있다. 북한 감독들까지 통쾌하다고 밝힐 정도니 한국을 넘어 한민족 전체의 긍지로 여겨도 손색이 없겠다. 앞으로도 메달 기대 종목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어 청년실업이나 세종시 논란 같은 무거운 주제에 눌려있던 국민들의 어깨가 다소나마 펴질 것 같다.

이번 쾌거가 주는 감동은 각별하다.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언제 이렇게 동계 스포츠의 강국이 되었나하는 놀라움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쇼트트랙 한 종목에서만 메달을 휩쓸었다. 빙속 등 다른 종목에 대해선 뿌리 깊은 콤플렉스가 있었다. 이것이 한 방에 날아갔다. 그리고 갑자기 세계 언론으로부터 동계 스포츠 강국으로 격찬 받고 있다. 쉽게 믿어지지 않는 성취다.

포괄적으로 생각하면 이는 우리 국민 모두의 업적이라 할 수 있다. 겨울 스포츠는 장비와 시설에 큰 돈이 들어간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해 돈 없는 나라는 선수를 제대로 키우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급상승한 경제력이 있었기에 동계스포츠의 훈련 여건을 개선하고 어린 재목들에게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여기다 과학적인 분석과 훈련시스템을 도입해 선수들을 맞춤형으로 지도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주된 동인은 역시 1989년생을 주축으로 한 신세대 선수들의 특질에서 찾아야 한다. 88올림픽 세대, G세대, 스포츠 신인류라는 명칭이 붙은 이들의 끼와 당돌함이 없었다면 이번 영광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은 선배 세대들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나타낸다. 경기장에서 보여준 밝고 경쾌한 모습에선 찌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했던 선배 선수들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경기를 즐기는 듯했다. 올림픽이란 거대한 대회의 부담감도 당당히 감수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겁게 소화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위업을 이루고도 울지 않는 것도 선배들과 다른 모습이다. 금·은메달을 딴 모태범, 이정수, 이승훈 모두 우는 대신 밝고 시원스런 웃음을 펼쳐보였다. 모태범의 메달 세리머니는 익살스럽고 유쾌하기까지 했다. 이상화는 눈물을 흘렸지만 절제됐다. 과잉이 느껴지지 않는 아름다운 울음이었다.

언론에 보도된 훈련 과정도 흥미롭다. 신세대 선수들에겐 전통적인 강압적 훈련 방식이 잘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이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이끌었더니 훈련 효과가 높아졌다고 한다. 통제와 명령 대신 동기부여를 해주고 의욕만 돋워주면 각자가 알아서 자기관리를 하는 신세대 선수들의 특징을 말해준다.

이번 쾌거를 계기로 신세대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많이 바뀔 것 같다. 지금까지 기성 세대 눈에 비친 신세대들의 이미지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개성 강하고 자유분방하나 협력 정신과 끈기, 도전의식이 약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점이었다. 하지만 이는 편견에 불과했던 것 같다. 메달을 딴 선수들의 스토리에서 볼 수 있듯 신세대는 그들만의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기성세대보다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구김살이 없고 당당하다. 자신감이 넘치고 개방적이며 표현도 솔직하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해보려는 끈기도 있다. 서구인들에게 쉽게 주눅 들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관광이나 해외연수 유학 등을 통해 외국과 자주 접하며 글로벌화되었기 때문이다. 여기다 디지털 기기 사용 등 정보화에도 능하다.

구본무 LG회장은 얼마 전 승진한 그룹 임원들을 교육하는 자리에서 “젊은 세대들은 자기 표현력이 좋으므로 이들을 키우려면 기를 살려 자꾸 잘한다고 칭찬하고 격려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세대들의 장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살려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의 말처럼 신세대들의 기를 잘 살려주면 운동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유쾌한 반란과 역전을 일으켜 국민을 즐겁고 기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박동수 논설위원 d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