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밴쿠버 효과

입력 2010-02-18 18:22

스케이트가 이 땅에 첫 선을 보인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이 무렵 조선을 네 차례 방문한 영국의 작가이자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쓴 기행문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 그 장면이 나온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1894년 사람들을 경복궁 향원정으로 초대해 스케이트 파티를 열었다는 내용이다. 조선인이 처음 스케이트를 탄 것은 1904년이라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향원정에서 스케이트를 지친 사람은 모두 이방인이었던 듯하다.

조선인 최초의 스케이터는 황성기독청년회(YMCA) 회원 현동순이다. 국내 최강 YMCA 야구팀 투수였던 그는 1904년 귀국길에 오른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에게 15전을 주고 스케이트를 구입해 혼자서 타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8년 후 서울 용산 부근에 만들어진 첫 빙설장(氷雪場)이 무료로 개방돼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웠던 스케이트는 대중 곁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섰다. 1915년에는 중국 팀이 참가한 가운데 의주에서 첫 국제 빙상대회가 열렸다.

한국 빙상의 올림픽 도전은 1936년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대회에 김정연, 이성덕, 장우식 선수가 참가하면서 시작된다. 손기정 선수보다 앞서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 무대에 서야 했던 김정연 선수는 1만m에서 18분2초(12위)로 일본 신기록을 수립, 망국의 한을 달랬다. 당시 한국 선수의 실력은 일본 선수보다 월등해 1932∼38년, 41년, 43년 전일본선수권대회 우승을 한국인이 거머쥐었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연일 한국 빙상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열악한 환경을 딛고 거둔 성적이라 더욱 자랑스럽다. 국내에서 스피드 스케이트용 400m 트랙을 갖춘 빙상장은 태릉 스케이트장이 유일하다.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등록된 선수(2008년 기준)는 초·중·고를 포함해 449명(남 309, 여 140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세계 최초로 남녀 500m를 동시 석권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내년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가 열린다. 여기서 2018년 평창 올림픽 개최 여부가 판가름난다. 모태범, 이상화 선수의 금메달은 평창 유치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또 지금까지 쇼트트랙에 편중된 겨울스포츠 종목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세계 정상과는 현격한 차이로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스키와 스노보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봅슬레이, 루지, 스켈레톤 등 썰매 종목 등에도 보다 많은 관심과 투자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