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비운의 영친왕家 관련 희귀자료 공개… 2008년 재일교포 하정웅씨 기증
입력 2010-02-18 19:12
“미혼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신년이다. 왠지 모르게 즐거운 마음도 들고 또 아쉬운 마음도 든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1897∼1970)과 약혼한 일본인 마사코(1901∼89)의 1919년 1월 1일자 일기 내용이다.
하지만 결혼을 사흘 앞둔 1월 21일 그녀는 “생각하지 못한 비보가 내 귀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경성에 계시는 이태왕(고종) 전하께서 뇌일혈로 중태에 빠지셨다는 보고였다. 아아, 지금까지의 기쁨은 이내 슬픔으로 변했다”고 적었다.
고종의 승하로 결혼식은 이듬해 4월로 연기됐다. 훗날의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는 1919년 마지막 날, 결혼을 준비하는 신부의 설렘을 일기에 적었다.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즐거운 추억은 오직 전하(영친왕)께서 오셨을 때의 기억이다. 이것은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상이다. 슬픔이 변해서 기쁨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두 번, 세 번, 몇 번이라도 거듭해 가야 할 즐거움이다.”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정종수)은 영친왕비가 1919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쓴 일기 1첩을 비롯해 편지 39통, 엽서 121통, 사진 514점, 영친왕의 수첩, 다큐멘터리 필름 등 영친왕가(英親王家) 관련 희귀 자료 700여점을 18일 공개했다.
재일교포 하정웅씨가 2008년 주일본 한국대사관에 기증한 유물로 100년 전 일본에 강제합병된 ‘비운의 왕가’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관련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화제에 오른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1912∼89)가 1929년 새해를 맞아 오빠인 영친왕에게 일본어로 쓴 엽서가 눈길을 끈다. “오라버님. 밝은 기분으로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신 것을 더욱 더 하례드립니다. 설날. 덕혜.” 옹주는 영친왕비에게도 엽서를 보냈다. “언니 보세요. 밝은 기분으로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신 것을 더욱 더 하례드립니다.”
순종비인 순정효황후가 영친왕 부부에게 안부를 묻는 한글 편지도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고 박물관은 설명했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을 모시고 서북순행(西北巡行)할 때 태극기와 일장기가 함께 걸린 사진과 덕수궁 석조전 내부에서 촬영된 사진, 영친왕 내외의 성장과 결혼 등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8㎜ 영화 ‘흐르는 세월’도 처음 공개됐다.
또 영친왕이 휴대하며 도시 정책, 남녀평등 등에 대한 기록을 남긴 포켓용 수첩도 유물에 포함됐으며 영친왕의 형인 의친왕의 장남 이건(1909∼91)과 의친왕의 차남으로 1945년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희생된 이우(1912∼45)의 엽서도 포함됐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