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초차로 금메달 못따도 밝게 웃으며 “캬! 아깝다”
입력 2010-02-18 22:06
18일(이하 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 미디어센터에서 남자 1000m 은메달을 딴 모태범(21·한국체대)의 외신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국, 유럽 등 외국 기자 20명 정도가 모태범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회견은 통역으로 진행됐다.
한 외신 기자가 ‘그동안 감독에게 어떤 걸 배웠는지 3가지 정도 소개해 달라’고 하자 모태범이 오른손을 번쩍 들어 손가락 다섯개를 펴보였다. 3가지가 아니라 5가지도 넘는다는 뜻이었다.
다른 외국 기자가 ‘한국은 어떻게 팀 훈련을 하느냐’고 묻자 모태범이 내놓은 첫 답변은 “그건 곤란한 질문인데요”였다. 한국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니까 관심을 갖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다 얘기해줄 수는 없다는 취지였다. 모태범은 “연습 때나 시합 때나 열심히 할 뿐”이라고만 했다.
모태범은 외신 앞에서도 당돌했다. 보통 한국 선수들은 외국 기자들과 회견을 하면 주눅이 드는 경우가 많지만 모태범은 아니었다. 모태범은 질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자 입이 아프다는 듯 입을 떠는 시늉을 취하기도 했다. 회견을 마치고 나오는 모태범에게 기자가 ‘한국에서 유명해졌다’고 하자 “박태환이 아직은 저보다 더 유명하지 않나요?”라고 했다. 운동선수인지 개그맨인지 헷갈렸다.
앞서 모태범은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나자마자 손바닥을 치면서 “캬! 아깝다”고 했다. 샤니 데이비스에게 0.18초차로 밀려 금메달을 내준 데 대한 반응이었다. 금메달을 못 따면 실망감과 미안함 때문에 마음이 무거울 수 있는데도 모태범은 밝게 웃었다.
모태범은 ‘금메달 따고도 울지 않더라’는 지적에 “만약에요. 제가 금, 은, 동메달을 모두 따면 그 때는 진짜 울 거예요. 무릎 꿇고요”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금, 은메달을 딴 모태범은 21일 남자 1500m 경기에 출전한다.
모태범은 왼쪽 귀에 나이키 로고 모양의 금색 귀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남들이 스폰(협찬)받은 거 아니냐고 하는데 절대 아니에요. 자비로 한 겁니다. 자비”라고 했다. 귀국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승훈(남자 5000m 은메달)이랑 같이 길거리를 걷기로 했어요. 사람들이 누굴 더 알아보나 궁금해서요”라며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그러나 모태범은 “금메달 따고 나서 규혁이 형이 잘했다며 절 안아주시더라”면서 선배에 대해 깍듯한 예우를 갖췄다.
남들은 죽기 살기로 나서는 올림픽이지만 모태범에게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은 놀이터 같아 보였다.
밴쿠버=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