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 다한 이규혁,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입력 2010-02-18 18:10


경기를 끝낸 이규혁(32·서울시청)은 빙판 위에 드러누웠다. 멀리서 그를 비춘 방송 카메라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들썩이는 그의 가슴이 클로즈업됐다. 곧 카메라는 다음 레이스를 펼칠 선수들에게로 옮겨갔지만 단 몇 초의 짧은 순간, 그는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이자 맏형 이규혁이 18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1분09초92의 기록으로 9위에 머무르며 끝내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13살이던 1991년 태극마크를 단 이규혁은 올해로 대표팀 생활이 19년째다. 2007년과 2008년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고, 월드컵 대회에서도 늘 상위권에 랭크되는 등 크고 작은 국제 대회에서 눈부신 성적을 냈다. 그러나 올림픽 메달은 항상 그를 비켜 갔다.

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부터 지난 2006년 토리노올림픽까지 거듭된 실패는 큰 충격이었다. 여러 차례 은퇴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는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 최고 스프린터의 모습을 과시했다.

지난 2일 밴쿠버 동계올림픽 선수단 결단식에서 이규혁은 “결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올림픽 직전 열린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컨디션도 좋았다.

그러나 올림픽 불운은 이번에도 그를 덮쳤다. 지난 16일 열렸던 500m 경기에서 15위에 그친 이규혁은 마음을 다잡고 올림픽 마지막 무대인 18일 1000m 경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지만 메달권에 들지 못했다. 한참 동안 빙판 위에 누워있던 이규혁은 은메달을 따낸 11년 후배 모태범을 찾아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취재진과 만나는 믹스트존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올림픽 무대에서 보여준 마지막 모습은 힘겨운 경기를 끝낸 후 자신의 도전을 끝내 외면했던 올림픽 빙판 위에서 누워있는 것이었다. 국민들은 최선을 다해 도전하고, 좌절하고, 다시 또 도전하다 누워버린 이규혁의 모습을 가슴 속에 새겼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