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운송업계 ‘느림의 미학’… 속도 줄여 연료비 절감,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

입력 2010-02-18 18:10

‘느린 게 더 낫다.’

세계 운송업계에서 최근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화두다. 느린 속도로 운항해 연료비를 절감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7일 보도했다. 속도가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의 이유 있는 ‘거북이’ 전략이다.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 기업은 세계 최대 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사다. 이 회사 화물선인 에바 머스크호는 독일을 출발해 중국 광둥성에 도착하는 데 1개월 이상 걸렸다. 2년 전과 비교하면 1주일이나 더 걸렸다.

하지만 컨테이너선의 항해속도를 기존 시속 46㎞에서 시속 22㎞로 낮춤으로써 연료 소비량을 30% 이상 줄일 수 있었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같은 비율로 감축시켰다. 이 회사는 이에 대해 ‘상당한 진전’이란 평가를 내렸다. 머스크사는 초저속 운항이 새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을 확신하며 220척의 컨테이너선에 이 운항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런 영업 방침은 연료비용 절감 차원에서 비롯됐다. 2008년 석유 가격이 배럴당 145달러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통한 환경보호가 주요 관심사로 부각된 점도 또 다른 배경이다. 머스크사의 환경 지속 가능성 담당이사인 소렌 스틱 닐센은 “예전에는 비용과 빠른 배송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이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라는 세 번째 기준이 생겼다”고 말했다.

항공과 육로 운송에서도 느림의 미학은 유효하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유럽항공청(EEA)의 페데르 얀센은 “항공기가 미국 뉴욕이나 보스턴에서 덴마크 코펜하겐까지 운항할 때 속도를 늦춰 비행시간을 5∼6분 더 늘린다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미국의 자동차 운전속도를 시속 65마일에서 55마일로 줄일 수 있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 이상 감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사례들은 초특급 배송부터 초고속열차, 초고속인터넷 등 속도가 만들어내는 문화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느림’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NYT는 설명했다.

김영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