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냄새나는 모사드… 꼬리 잡히나
입력 2010-02-18 18:10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가 최대 위기에 빠졌다. 지난달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배후에 모사드가 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국제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50대 한 아랍계 남자가 발코니도 없고 창문도 잠긴 알부스탄 로타나 호텔 객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건 지난달 20일. 그는 팔레스타인 정치조직 하마스의 고위간부 마흐무드 알 마부였다. 그는 1989년 이스라엘 군인 2명을 납치·살해한 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이스라엘 정부가 현상수배 중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18일 “알 마부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스라엘 언론은 나팔을 불 듯 제목을 뽑았고, 정부 관료들도 모사드를 칭송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용의자 11명의 맨얼굴이 호텔 CCTV에 녹화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두바이 경찰은 지난 15일 11명의 얼굴과 이름, 국적을 공개했다. 외국 태생의 유태인인 이들은 각각 영국 아일랜드 독일 프랑스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영국 정부는 즉시 “킬러들이 사용한 6개의 영국 이름은 모두 실제 인물이나 이번 사건과는 무관하다”며 “신상정보가 도용당했다”고 밝혔다. 여권을 도용당한 다른 6명도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이 있는 외국인으로 드러났다. 나머지는 허구의 인물들이었다.
영국 정부는 17일 이스라엘 대사를 소환해 여권이 위조된 경위를 해명하라고 촉구했다. 영국 언론은 “모든 영국 시민의 정보가 국제범죄에 이용당할 위기에 처했다”고 들끓었고, 영국 경찰도 전면 수사에 들어갔다. 이스라엘 정부는 “용의자들이 이스라엘인이라고 모사드가 개입한 것으로 볼 순 없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내 여론도 싸늘하게 변했다. 일간지 하레츠는 17일 1면 기사를 통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 같던 사건이 이제 의혹에 휩싸였다”며 모사드의 메이어 다간 국장 사퇴를 촉구했다. 다른 이스라엘 언론들은 모사드를 직접 지목하진 않았지만 킬러들이 두바이 경찰의 수사 능력을 간과했고, 공작이 너무 허술했음을 비판했다.
과거에도 모사드가 배후로 의심되는 암살 사건들이 있었다. 미 ABC방송은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들이 살해된 사건 이후 모사드가 보복 살인에 나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73년 10월 레바논 베이루트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지도자 암살, 80년 6월 프랑스 파리의 이라크 핵 기술자 암살, 83년 8월 그리스 아테네의 팔레스타인 자문역 암살, 97년 9월 요르단의 하마스 간부 암살, 2000년대 헤즈볼라 간부들을 겨냥한 일련의 폭탄 테러 등이 모사드가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거나 배후로 의심된다고 보도했다.
AFP통신은 이번 암살사건의 배후에 모사드가 있다는 이스라엘 안보담당 관료의 말을 전하면서 “모사드가 벌인 위장 공작 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심각한 외교적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