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주은] 모험의 나날들
입력 2010-02-18 18:07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닌텐도 게임이 있다. 아빠가 딸을 키우면서 1주일씩 한 달 계획을 짜주는데, 그렇게 성장한 딸은 어른이 되었을 때 제각각 다른 모습을 하게 된다.
첫 번째 주에는 영어공부, 두 번째 주에는 수학공부, 이렇게 계속 공부만 시켜보면 끝 장면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뜻밖에도 딸은 퉁퉁하고 허름한 외모에다 눈도 나쁘고 고생스럽게 장부 정리 같은 것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에 비해 어릴 적부터 골고루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하고, 봉사활동을 시키며, 파티에도 가도록 격려하면 마침내 딸은 우아하고 기품 넘치는 공주로 변하여 화면에 나타난다.
번쩍 무언가 말해주는 게임이었다. 노력을 하면 어느 수준 이상의 모범적인 생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인생을 최상으로 만드는 과정에는 분명 노력이 아닌 다른 변수가 개입되는 것 같다.
나는 인생은 타고난 능력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운세가 좌우한다고 믿는 편이다. 여기서 “노력은 왜 무시하시나요?”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들 대다수가 이미 노력하며 살고 있는 걸요.”
1만 시간을 남들보다 더 바치면 그 분야에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다고들 하지만 모두들 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추가로 꼬박 1만 시간을 더 투자하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계산해 보면 매일 4시간씩 더 노력한다고 가정했을 때 2500일에 해당하는 시간을 악착같이 활용해야 승산이 있다는 소리다. 어떤 사람은 1만 시간의 법칙을 읽으며 용기를 얻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아득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아예 노력이라는 변수는 인생을 이야기할 때 빼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슬럼독 밀리어네어’라는,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다가 노력이라는 단어를 대신할 새로운 변수를 찾을 수 있었다.
텔레마케터의 커피심부름이나 하던, 그야말로 못 배우고 가난하던 소년이 백만장자 퀴즈쇼에 나가서 아슬아슬하게 정답을 전부 맞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화면 맨 첫 장면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객관식 문제를 낸다. ㉠속임수를 썼다 ㉡재수가 좋았다 ㉢천재였다 ㉣그럴 운명이었다. 그는 속이지도 않았고, 별로 재수가 좋은 적도 없었으며, 천재는 절대로 아니었으니 답은 ㉣이다. 퀴즈마다 그가 어릴 때부터 겪어왔던, 무척이나 엉뚱하면서도 운명적인 모험들이 하나하나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스타의 얼굴을 보기 위해 똥통에 빠지는 용기를 냈기에, 불쌍한 옛 친구에게 100달러를 주기로 과감히 선택했기에,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 갖가지 장애물에 맞섰기에 그는 문제를 풀 수 있었던 것이다. 모험들을 통해 배운 것이 있었다는 의미다.
운명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리는 것도 아니고, 노력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당장은 시간낭비처럼 여겨지는 사소한 모험들이 하루하루 누적되어 스스로의 운명을 써가는 것이다.
이주은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