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정의 사진] 빛에 빚지다
입력 2010-02-18 17:55
‘빛에 빚지다’는 용산 참사 희생자들이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던 지난해 추석 무렵, 사진가들이 유가족을 위해 기금을 마련하고자 만든 달력의 이름이다. 카메라의 특성상 사진은 빛 없이는 태어날 수 없다. 그래서 사진가들은 늘 빛에 신세를 지고 산다고들 말한다. 생각해 보면 사진이 빚지고 있는 게 어디 빛뿐이겠는가.
기아에 허덕이는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 사진으로 1994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케빈 카터는 소녀를 구하지 않은 채 셔터를 먼저 눌렀다는 비난에 시달리다 그해 결국 자살을 택했다. 물론 카터의 촬영 상황이나 자살 배경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으나, 아직도 포토저널리스트의 윤리적 태도에 대한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유럽 사진가가 북서부 아프리카의 모리타니공화국에서 여성을 사진 찍어 엽서로 만들었는데, 결국 그 엽서로 인해 사진 속 주인공이 이혼을 당한 경우도 있다.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이 아무에게나 모델이 돼 주었다는 게 이혼 사유였다. 초상권 허락을 받지 않고 사진가가 몰래 길거리 캐스팅을 했다가 파장이 커진 것인데 사진가도 의도한 건 아닐 터였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늘 이런저런 이유로 부채감에 시달린다. 굳이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무거운 주제가 아니더라도 오지의 문화를 파헤치는 소재주의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사진 속 주인공의 딱한 사연을 팔아 돈을 버는 게 아니냐는 극단적 질문과도 맞닥뜨려야 한다. 설령 아무런 말을 듣지 않더라도 사진가들은 본인 스스로가 촬영하고 있는 주제나 대상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느끼곤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진을 찍는 일이 사진가의 사명이지만 사진가도 인간인 만큼 이런 현실 앞에서 무기력해지거나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난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사진상 심사에 참여했다. 이 상의 본래 이름은 ‘포토그래퍼스 기빙 백(Photographers Giving Back)’으로 ‘돌려주는 사진가’ 정도가 우리식 이름이 될 듯하다. 이 상은 10여년 동안 포토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스웨덴 사진가가 소말리아에서 촬영 중 목숨을 잃은 친구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는데 성격이 조금 특이하다. 우선 여느 상처럼 수상자를 뽑아 상금을 주고, 사진집 등을 발행하는 것은 똑같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나아가 수상한 사진 전체를 통틀어 도움이 필요한 사진 속 주인공을 선정해 실질적 도움을 주는 자선행사의 성격이 강한 사진상이다.
심사는 심사위원이 맡고, 그 중에서 도움을 줄 주인공은 PGB재단에서 실질적 가능성 여부를 타진해 선정한다. 그 뒤 해당 사진을 찍은 사진가 등과 논의를 거쳐 구체적인 도움 방법을 찾는다. 지난해에는 콩고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빚을 갚았다’. 그 마을은 후원금으로 밭을 사 피해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 있다. 사진가들이 지니고 있는 부채감을 서로 같이 갚아보자는 아주 작은, 그러나 아주 설득력 있는 실천의 방편인 셈이다.
햇살 한 점 없이 하루 종일 우울한 스톡홀름에 머무는 동안, 빛에 빚을 진 건 사진가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간절했다.
<포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