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지않은 길, 2700㎞ ‘코리안 루트’ 새기리라

입력 2010-02-18 18:01


세계 최초 그린란드 종단 도전 홍성택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면적 81%가 얼음으로 덮인 땅, 최고 3000m 눈이 쌓여 산이 됐는데 ‘초록땅’이라 불리는 곳. 체감기온이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그린란드에 한국 산악인 2명이 도전장을 냈다.

‘그린란드 원정대’ 홍성택(44) 대장과 왕청식(42) 대원. 4월 세계 최초로 그린란드 2700㎞ 종단에 나선다. 부산에서 시베리아 바이칼호수에 이르는 거리다. 지금까지 그린란드 탐험은 모두 최장 1200㎞ 횡단코스였다. 두 사람이 뚫으려는 ‘코리안 루트’는 아무도 밟아보지 못한 길이다.

조건은 가혹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섬 그린란드는 북극 남극 에베레스트에 이어 지구의 ‘제4극점’으로 불린다. 블리자드(눈보라)와 크레바스(빙하의 깊은 균열), 혹한과 공포가 도사리는 땅을 고작 개썰매 2대와 크로스컨트리용 스키로 건너려 한다.

그런데…. 홍 대장이 원정 결심을 알리자 아내 송혜정(42)씨는 흔쾌히 허락했다. 이번엔 적어도 산에서 떨어져 죽을 걱정은 별로 없겠다면서.

제4극점

홍 대장은 북극 남극 에베레스트 세 극점을 모두 밟았다.

‘화이트아웃(극지에서 설원에 가스가 덮여 원근감이 사라지는 현상)’을 뚫고 44일간 1400㎞를 걸어 1994년 1월 세계 4번째로 남극점에 도달했다. 당시 28세. 허영호 대장이 이끈 탐험대 4명 중 막내였다.

95년엔 박영석 대장과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히말라야는 10차례 올랐다. 에베레스트 3번, 로체 남벽, 푸모리 동벽, 시샤팡마,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타파피크 등. 엄홍길 대장이 히말라야에서 가장 고전한 로체샤르에 2007년 4전5기로 도전해 성공할 때 등반대장을 맡은 이가 홍 대장이다.

난빙대(야산처럼 솟은 거친 얼음지대)를 헤치고 리드(얼음이 갈라져 바닷물이 드러난 곳)를 건너 북극점에 도달한 건 2005년 5월 1일. 54일간 780㎞를 걸어 GPS(위성항법장치) 단말기에 북위 90도가 표시된 순간, 그는 세계 15번째로 지구 세 극점을 정복한 사나이가 됐다.

북극에서 돌아오며 마음에 품은 다음 목표가 그린란드다.

“그린란드는 사람과 마을이 모두 남·서쪽 해안에 몰려 있어요. 얼음과 눈이 1000∼3000m 쌓여 있는 내륙은 실제 어떤지 알려진 게 별로 없죠. 연구자들이 간혹 헬기로 둘러볼 뿐이에요. 미답의 땅에 가려는 겁니다. 온난화 논란이 한창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고요.”

단순한 탐험이 아닌 모양이다.

“그린란드 얼음이 모두 녹으면 세계 해수면이 6m 상승한대요. 지구온난화로 3년 전부터 녹는 속도가 빨라졌고요. 그런데 1000년마다 찾아오는 자연스런 해빙기란 주장도 만만치 않아요. 해안 쪽은 녹아도 내륙 얼음은 더 두꺼워지고 있다는 거죠.”

그린란드에는 각국 연구진이 상주하며 온난화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해안에서 녹아 바다로 떨어지는 빙산은 종종 온난화 경고음으로 제시된다. 반면 985년 유럽인이 건너가 정착할 때는 지금보다 훨씬 따뜻했으며 기후 사이클에 따라 다시 따뜻해지고 있을 뿐이란 학설도 있다. 마침 이번 겨울 세계 각지에 한파가 닥치며 온난화 실체 논쟁이 가열됐다.

홍 대장은 “직접 가보면 알 수 있지 않겠냐”고 한다. 원정대는 종단 루트를 따라 얼음 상태, 지질환경, 생태계 등 내륙의 속살을 촬영키로 했다. 크레바스를 만나면 로프 타고 내려가 얼음 샘플도 채취하려 한다. 이렇게 확보한 영상자료와 각종 시료를 환경연구자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코리안 루트

D-데이는 4월 5일이다. 면적 3분의 2가 북극권에 속한 그린란드는 2월 말에야 제대로 해가 뜬다. 지금은 거의 종일 밤이다. 홍 대장은 이달 말 현지로 가 탐험루트를 항공 답사한다. 프로펠러 비행기가 왕복하기에 너무 먼 거리여서 급유기가 함께 떠야 한다.

원정대는 3월 20일쯤 서울을 떠나 그린란드 일루이사트에 베이스캠프를 차린다. 썰매 개 80마리를 구하고, 보급루트 점검하고, 기후에 적응한 뒤 남단으로 내려가 북위 60도, 서경 44도 지점에서 장정에 오른다.

섬 중심부 해발 2500∼3000m 고지대를 질러가려 했으나 유사시 베이스캠프에서 구조대가 날아오기 어려웠다. 해발 1000∼2000m 서쪽 능선을 타기로 했다. 예상 기간은 약 60일. 6월 5일 전후에 북위 83도, 서경 34도에 도착하는 게 목표다. 하루 평균 40∼50㎞를 가야 한다.

일행은 3명으로 출발한다. 홍 대장, 왕 대원, 그리고 개썰매를 다룰 현지인 가이드. 가이드는 처음 한 달 간 동행한 뒤 두 사람이 개들과 친해지면 철수한다. 북위 68도 이북은 너무 추워 바이러스 청정지대다. 병균 퍼뜨릴까봐 남쪽 개를 데려가는 게 금지돼 있다.

썰매 1대를 개 17마리가 끈다. 북위 68도에서 북쪽 개로 바꾸고, 중간에 지치는 놈들을 교체하자면 80마리는 있어야 한다. 시베리안허스키보다 몸집은 작아도 지구력이 월등한 그린란드 토종견을 택했다. 베이스캠프는 원정대가 위성전화로 알려오는 좌표로 개, 식량, 장비를 적절히 공수하게 된다.

이렇게 설명을 들었지만 도대체 가능한 일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원정대가 달랑 2명인데 너무 적지 않은가.

“적을수록 성공확률이 높아요. 여럿이 가면 반드시 탈진자가 나옵니다. 1인당 장비와 짐 무게가 130㎏이 넘는데 탈진자 짐까지 떠맡게 되면 힘들어지죠. 왕청식은 히말라야에 10번 이상 오른 친구예요. 탐험경력은 없지만 인내심이 대단해 같이 가자 했더니 선뜻 좋다더군요.”

두 달을 버티자면 배낭엔 뭐가 들어갈까.

“식량이 가장 많고요. 연료, 취사도구, 로프·눈톱 등 장비, 구급약, 통신기구, 그리고 옷과 침낭이죠. 수시로 어는 통에 내의는 열흘, 침낭은 20일이면 기능을 상실해요. 여벌을 많이 가져갑니다.”

홍 대장은 배낭에 넣어가는 식량을 ‘꿀꿀이죽’이라고 표현했다. 산악인들이 쓰는 말이라고 한다.

“알파미라는 건조된 쌀이 있어요. 찬물만 부어도 불어서 밥이 돼요. 쌀에 물 붓고 국거리 바짝 말린 동결건조식품을 넣어 먹죠. 남극에서도 절대 얼지 않는 두 가지가 가솔린과 고추장이에요. 고추장은 꼭 가져가요. 가끔 호사부릴 땐 김을 곁들이고 100㎞마다 위스키 한 잔으로 자축도 하죠.”

평지에서 개썰매는 최고 시속 40㎞까지 낸다. 이걸 타고 달릴 거라 생각하면 착각이다. 썰매 2대엔 짐만 싣고, 사람은 스키를 신은 채 뒤에 매달려 간다. 난빙대나 프레스리지(얼음판끼리 부닥쳐 형성된 얼음언덕)가 나오면 스키를 벗고 개들과 함께 썰매를 끌어야 한다.

이런 행군은 하루에 열량 6000∼7000㎉가 소모된다. 홍 대장은 54일 간 북극 탐험 뒤 체중이 16㎏ 줄었다. 요즘 가장 열심히 하는 것은 많이 먹는 일이다. 살을 찌워 원정 때 태울 지방을 축적해야 한다. 조깅 수영 암벽등반의 체력훈련은 이미 생활이고, 스키는 남극과 북극에서 충분히 단련됐다.

엄홍길 허영호 대장도 이번 원정에 ‘찬조출연’을 한다. 엄 대장은 4월 말∼5월 초 열흘간 원정대에 합류키로 했다. 그는 96년 홍 대장의 장남 여명(14)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홍 대장을 히말라야 다울라기리에 끌고 갔다. 해발 8000m 눈보라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맞이한 여명(黎明)이 너무 포근해 아들 이름이 됐다. 엄 대장은 장남 얼굴도 못 볼 뻔한 그에게 빚이 있다.

초경량 비행기로 세계 일주를 계획 중인 허 대장은 5월 중순 그린란드 상공을 비행키로 했다. 홍 대장이 위성전화로 알려주는 좌표에 착륙을 시도할 계획이다. 활주로가 100m만 있으면 이·착륙할 수 있는 비행기여서 하룻밤 함께 보내려 한다. 산사람들의 ‘품앗이’란다.

홍 대장은 그동안 히말라야에서 동료 3명을 잃었다. 남편을 히말라야에 보낼 때마다 기도만 하던 아내가 이번엔 여명과 함께 베이스캠프를 지키기로 했다. 아빠의 도전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제 결혼조건은 딱 하나였어요. 산에서 돌아오지 못해도 아이들 잘 길러줄 여자. 결혼 잘했죠?” 홍 대장이 철없어 보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유도선수였다. 태극마크도 달았었다. 대학 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맞붙은 친구가 경기 중 척추를 다쳐 식물인간이 됐다. 유도를 버리려고 산에 다니다 허 대장을 만났다. 산이 돈보다 좋으냐고 묻자 대뜸 “170억원 버는 게 목표”라고 한다.

“99년 쌈짓돈 모아 대원 10명 데리고 로체 남벽에 갔어요. 실패하고 내려오는데 돈이 떨어졌어요. 여비 마련하느라 어떤 마을에서 장비를 몽땅 팔았죠. 제 신발까지 팔아서 해발 3700m부터 슬리퍼 신고 내려왔습니다. 그때 빚 1700만원을 2년 걸려 갚으면서 170억원 벌자고 결심했어요.”

‘170억원’을 벌면 산에 묻힌 동료들 유족을 위해 재단을 만들겠다고 했다. 돈 벌려고 몇 년간 학원을 운영하다 지금은 잠시 접은 상태다.

달변은 아니지만 그의 답변은 막힘이 없었다. 그린란드 원정계획은 이미 머릿속에 다 들어 있었고, 20년 등반과 탐험은 바둑알 다시 놓듯 오롯이 복기해 들려줬다. 전문지식이 없어도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 그런데 이 대목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런 모험, 도대체 왜 합니까?

“가슴이 뛰니까 하죠. 새로운 세계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뛰니까.”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