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시대 또하나의 ‘눈’ SNA 아십니까
입력 2010-02-19 21:05
지난해 6월 수도권 A지방검찰청 마약수사과. 마약 투약 용의자 2명과 판매책 2명이 내사 대상에 올랐다. 증거는 충분했다. 체포는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검찰은 마약 조직을 일망타진하고 싶었다. 통신 수사를 시작했다.
SK텔레콤, LG텔레콤, KT로부터 이들 명의로 된 유무선 통화내역을 입수했다. 이들이 사용한 대포폰 통화내역도 확보했다. 최근 6개월치만 무려 1만건이 넘었다. 검찰은 사회연결망 분석(SNA·Social Network Analysis)이라는 최신 기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연결고리를 찾아라
검찰은 SNA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30분이 지나자 수사선상에 오른 4명을 중심으로 한 전화 연결망이 그려졌다(그림1). 모서리 네 지점에 표시된 이들이 피내사자 4명이다. 전화를 주고받았다면 선으로 연결된다.
이들 4명 중 2명 이상과 전화로 연결돼 있는 이가 75명이었다. 압축해 들어가니 3명과 전화를 주고받은 사람은 7명, 4명 모두와 전화를 주고받은 사람은 5명으로 파악됐다. 제3의 인물들이 새롭게 드러난 셈이다. 검찰은 4명 모두와 접촉한 5명을 일단 내사 대상에 추가했다. 수사망을 좁힌 것이다.
검찰은 2002년부터 SNA 기법을 수사에 활용하고 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주요 지방검찰청에는 관련 프로그램이 구비돼 있고, 없는 곳은 대검에 분석을 의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NA 기법을 활용하면 누가 어느 분파 조직 구성원인지도 살펴볼 수 있다. 전체 조직원들의 전화 연결도를 그린 뒤 전화를 주고 받은 빈도와 통화 시간 등을 고려해 그룹별로 나누면 몇몇 군집 구조가 나타난다. 특정 조직에 속하는지를 판단하는 객관적 데이터로 참고할 수 있다.
네트워크를 주목하라
SNA 기법 창안자는 1930년대에 활동한 미국 사회심리학자 제이콥 모레노. 사이코드라마 창시자로도 유명한 그는 개인을 치료하려면 개인이 속한 집단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었다. 인간관계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호작용 네트워크로 보고 구성원 간의 관계를 ‘선호’와 ‘거부’로 연결시켜 보여주는 소시오그램(sociogram)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연결망 지도와 유사하다. 그는 이를 통해 집단의 구조를 분석했고 개인 심리 치료에 활용했다.
모레노 이후 초기 형태의 SNA 기법은 인류학, 문헌정보학, 범죄 분석 등에서 간헐적으로 사용됐다. SNA 기법 연구가 활발해진 건 1990년대 중반부터다. 인터넷 보급이 확산되면서 ‘관계(네트워크)’ 구조가 가시화됐다. 인터넷, 전자 금융, 휴대전화, 이메일 등은 예전엔 볼 수 없었던 ‘관계’를 디지털 형태로 축적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네트워크 연구는 디지털 형태로 된 데이터가 확보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개인과 집단의 인적네트워크 분석 등 다양한 SNA 기법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식흐름 연결망
지식경영이 유행이다. 조직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노하우를 공유해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문제는 노하우를 누가 가지고 있고, 어디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7월 조직 내 지식흐름을 분석했다. ‘업무에 필요한 지식을 제공해준 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지식흐름 연결망을 완성했다.
2008년 진단 결과는 부서원끼리만 지식을 주고받는 상태였다. 소통이 필요했다. 회사는 업무가 유사한 이들을 한데 묶어 노하우를 공유하는 소조직을 구성했다. 그랬더니 지난해엔 타부서 사람들 간에도 지식흐름이 다수 발견됐다. 지식이 두루두루 공유되고 있다는 의미다(그림2).
지식흐름 연결망을 통해 부서별 차이도 드러났다. 부서 내 지식흐름이 가장 활발한 곳은 ‘생산본부’. 부서 간 지식흐름이 활발한 곳은 ‘경영지원본부→S&T 본부’였다. 직급별로는 차장급이 지식흐름에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 직급 간 지식흐름 중에선 ‘차장급→과장급’이 가장 원활했다. 하위 직급의 커뮤니케이션은 저조했다.
현대오일뱅크 측은 2003년 지식경영을 선언하면서 사내 인트라넷에 KMS(지식경영시스템·Knowledge Management System)를 구축했다. 일하면서 알게 된 경험과 지식(암묵지·暗默知)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난해 분석 결과, 암묵지 지식흐름의 중심에 있는 허브들이 KMS 상에선 열심히 활동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율은 겨우 22.6%였다. 노하우를 많이 아는 ‘꾼’들이 공식적인 지식 전달 시스템에선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암묵지 보유자를 KMS로 끌어들이는 게 과제로 남았다.
혁신 아이디어 흐름도 분석됐다. “업무를 혁신적으로 개선할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누구에게 이를 얘기하고 상의하겠는가”를 물어 만든 그림이다. 예상대로 몇몇 허브들이 대부분의 링크를 받고 있었다. 이들에게 회사의 모든 아이디어와 정보가 모인다는 뜻이다.
현대오일뱅크측은 이 결과를 반영해 혁신 아이디어 허브에 해당하는 이들을 불러 분기별 콘퍼런스를 열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회사 정책에 대한 각종 제언, 업무 개선 아이디어 등이 공유된다. 회사 관계자는 “허브들을 통해 사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며 “지식흐름 진단 후 일부에 편중됐던 지식이 조직 내 골고루 분포되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검색 활용
SNA 기법은 검색 서비스에도 활용되고 있다. 현재 검색은 키워드를 입력하면 해당 단어가 포함된 문서들이 나열되는 방식이다. ‘김연아’를 입력하면 ‘김연아’가 포함된 웹페이지들이 나타난다. ‘김연아’와 특정 키워드의 관계를 보여주는 기능은 없다. 효율성이 떨어지고 트렌드 파악이 불가능하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서울대물리학전문연구정보센터가 최근 네트워크 분석 업체 ‘사이람’에 의뢰, 물리학 지식지도를 만들었다. 1990∼2008년 웹 오브 사이언스(Web of Science)에 등록된 130만여개 논문이 대상이다. 학자들은 논문마다 여러 개의 키워드를 입력한다. ‘행정중심복합도시 및 혁신도시 건설에 따른 혼잡비용 감소효과 분석’ 논문이라면 키워드는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혼잡비용’ 등이 된다.
지식지도를 활용하면 특정 키워드와 한 논문에서 동시에 출현하는 키워드가 무엇인지 시대별로 훑어볼 수 있다. ‘나노’ 연구를 예로 들면, 1996∼2000년에는 ‘Crystal’ ‘Surface’ 등이 같은 논문에 자주 출현한 키워드다. 2001∼2005년엔 ‘Scattering’ ‘Growth’, 2006년 이후에는 ‘Particle’ ‘Nickel’ 등이 함께 등장한다(그림3). 나노를 둘러싼 학문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나노 연구에서 새로운 분야가 무엇일까 고민한다면 이런 방식으로 ‘동시출현 키워드 네트워크’를 확인하면 된다.
연구자들의 관계도 알 수 있다. ‘동시인용 저자’ 검색을 활용하면 하나의 논문에서 특정 전문가와 동시에 인용된 전문가를 볼 수 있다. 한 논문에서 함께 인용됐다면 같은 분야 전문가라는 게 간접적으로 입증되는 셈이다.
사이람 관계자는 “SNA를 검색에 활용하면 기존 검색으론 보기 힘든 구조화된 정보를 볼 수 있다”며 “SNA는 개별 정보 자체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정보 간 관계를 드러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