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역사·예술을 담아 짓다
입력 2010-02-18 17:48
‘어떤 건축’/최준석/바다출판사
건축은 어느 것 못지않게 우리들의 삶과 밀착된 영역이지만 어렵고 접근하기 부담스러운 분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일반인들에게 건축은 부의 수단인 부동산 아니면 거대한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한꺼풀만 벗겨보면 건축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과 역사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건축가 최준석(39)은 스스로 서문에 밝혔듯 ‘건축이라는 근엄한 성곽 주변에 흩어진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워 담아’ 일반인들을 건축의 매력에 눈 뜰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가 주목한 대상은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29개의 건축물이다.
서울 양화대교에 걸쳐 있는 선유도공원을 이야기할 때는 골동품이 풍기는 깊고 진한 멋이 스며나온다. 건축가 조성룡의 작품으로 2002년 문을 연 공원은 정수장을 재활용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기존 시설을 해체하지 않고 그대로 둬 콘크리트 구조물들을 타고 오른 담쟁이덩굴들이 자연스럽고 고풍스런 이미지를 풍긴다. 원래는 선유봉이란 돌산이 있었으나 1920년대 대홍수 이후 추진된 한강 둑 정비사업 과정에서 깎여나갔고, 30년 전 정수사업소를 거쳐 오늘날의 공원으로 태어나게 됐다.
서울 장충동의 웰컴시티에서는 승효상의 건축철학인 ‘빈자의 미학’을 음미한다. 커다란 콘크리트 받침대에 붉은색 덩어리 4개가 박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웰컴시티는 공간을 나누고 비워 도시가 숨 쉴 수 있는 여백을 제공한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서울 을지로2가 SKT타워는 싱가포르 건축가 아론 탄이 디자인한 것으로 윗부분이 도로 쪽으로 쓰러질 듯 꺾여 있다. 이 건물에서 깍듯하고 예의바르게 인사하는 이미지와 도심 한 복판에 세워진 거대한 휴대전화의 이미지를 떠올린 저자는 “브랜드와 이미지를 표현해야 하는 건축이라면 제품 디자인처럼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가 디자인한 바르셀로나 구엘공원을 통해서는 동시대에 살았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그림 세계를 빌어 가우디 건축의 특징을 설명한다. 저자는 “둘 사이를 이어주는 공통점은 유려한 관능미다. 육체의 욕망을 벗어나 정신의 완성으로 다가가려는 궁극의 에로티시즘”이라고 말한다. 가우디의 작품으로,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성가족 성당의 고딕 첨탑에서 저자는 신의 세계로 다가서려는 인간의 욕망을 읽어낸다.
프랑스 동쪽 끝 작은 마을인 롱샹에 들어서 있는 롱샹 성당은 화가 밀레의 작품 ‘만종’에 비견할 만한 종교적 서정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했다. 밀짚모자를 눌러 쓴 가난한 농부를 떠올리게 하는 성당은 당시 프랑스 최고 건축가 르코르뷔지에(1887∼1965)의 작품으로,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18세기 조선 백자의 우아함이 느껴지는 건축물이라고 지적한다. 동양문화에 호기심이 많았던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우아한 곡선, 순백의 살결, 매끈한 피부와 풍만한 자태 등으로 백자의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울 대신동 김옥길기념관에서는 평생 검소한 삶을 살면서 교육에 투신한 김옥길(1921∼1990)의 솔직담백한 삶을 발견한다.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디자인한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타워는 건물 표면을 캔버스 삼아 도시의 틀 속에 갇혀 있는 점과 선, 집과 사람, 철학과 욕망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해석한다.
전남 담양의 소쇄원은 꾸미지 않고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룬 조선 공원의 진수를 보여주며, 충남 예산 추사고택은 소박하면서도 단단한 선비의 기품이 엿보이는 ‘세한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스페인 빌바오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1929∼ )의 자유분방한 디자인과 유연하게 헤엄치는 은빛 물고기들이 펄떡거리는 듯한 활력을 발견한다.
저자는 건축물을 음미하는 일은 미술작품을 관람하거나 음악을 감상하는 것처럼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매혹적인 행위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풀어 놓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건축은 거주공간이란 실용적인 이미지를 넘어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예술적 가치를 지닌 영역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