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송사로 본 조선시대 사법풍경 ‘나는 노비로소이다’

입력 2010-02-18 17:47


1586년(선조 19년) 전라도 나주 관아에서 노비소송이 벌어졌다. 원고 이지도는 다물사리가 양인이라고 하고, 피고 다물사리는 자신이 노비라고 반박한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다물사리가 자신을 노비라고 우긴 연유와 극적인 반전이 드러난다. 임상혁 숭실대 교수는 당시 나주 목사의 종택에 묻혀 있던 판결문을 찾아내 420년 전 열린 소송의 전모를 그려낸다. 조선시대 송사는 역동적이었다. 원고와 피고는 말 또는 문서로 자기 주장을 적극 펼쳤다. 재판의 공정성이 의심될 경우 소송을 다른 곳에서 할 수 있게 하거나 세 번까지 제소할 수 있도록 한 제도 등은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 사법 풍경을 통해 노비제도를 둘러싼 당시 사회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너머북스·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