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에 녹여낸 철학, 말랑말랑해졌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입력 2010-02-18 21:59


강신주/동녘/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박사 강신주의 강의는 쉽고 재미있어서 인기가 많다. 어렵고 추상적인 철학을 일상, 문학, 영화 등 친근한 소재로 엮어서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의 수업에서 학생들은 긴장을 풀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들으면서 사랑을 떠올리고, 가라타니 고진을 공부하면서 의사소통 방식을 생각한다.

전작 ‘철학, 삶을 만나다’에서 철학과 일상을, ‘상처받지 않을 권리’에서 철학과 문학가를 짝지은 저자는 이번에는 철학과 시의 접목을 꾀한다. 저자는 김수영, 김춘수, 기형도 등 우리에게 친숙한 현대시인의 시를 현대 철학의 주요 개념과 교차시켜서 이해를 돕는다.

총 21편의 현대시를 21명의 현대 철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각 장은 시 한편 읊어주고 관련된 철학자의 이론을 간략하게 설명한 후 그 시선으로 시를 해석하는 작업의 반복이다. 가령 6장 ‘소비사회의 유혹’은 유하의 시 ‘오징어’로 문을 연다. 집어등의 빛이 곧 죽음이지만 몰려드는 오징어는 자본에 탐닉하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이어 자본주의와 욕망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파헤친 발터 벤야민을 떠올리고서는 벤야민의 철학과 시대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식이다.

저자의 풍부한 감수성 덕분인지 ‘철학적 시 해석’은 에세이를 읽듯이 부드럽게 흐른다. 원재훈의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는 레비나스의 타자론과 포개지면서 형이상학적으로 탈바꿈한다.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무한정 기다린다. 기다리면서 ‘빗방울보다 아니 그 속의 더 작은 물방울보다 작아지는’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다. 사랑하는 당신을 내가 ‘어찌할 수 없음’에 ‘작아져 저 나뭇가지 끝 매달린 한 장의 나뭇잎이 된다.’

이 상황을 저자는 레비나스의 개념을 빌어 화자의 그대는 ‘무한성’을 띤 존재라고 설명한다. ‘무한’은 이 세계에는 나의 의식으로 투명하게 알 수 없는 타자다. 그를 알고 싶지만 알 수 없으므로 우리는 이런 사랑 앞에서 겸손해진다. 또한 이 때문에 우리는 그 대상을 마주쳤을 때 설렌다. 알 수 없는 당신 앞에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던 기억이 생생하지 않는가. 또한 그로 인해 앞으로 자신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다짐하며 지새운 밤도 잊을 수 없다. 사랑의 흥분과 기약을 놓고 저자는 레비나스가 ‘타자와의 관계가 미래와의 관계라고 이야기한 까닭’이라고 지적한다. 미지의 타자 앞에서 우리는 현재를 생생하게 느끼게 되고, 또 그로 인해 내일을 기약하기 때문이다.

‘꽃의 시인’ 김춘수의 시 ‘어둠’을 놓고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 망각’ 개념을 끌어온다. 시 ‘어둠’은 깜깜한 공간에 촛불이 켜진 현상을 노래한다. 정전이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無)의 세계. 성냥불이 그어지면 사물이 하나씩 되살아나고 의미가 충만한 세계로 변한다. 하지만 촛불이 닿지 않는 곳은 여전히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 채 잊혀진다. 이 시를 읽고 저자는 촛불이 열어 놓은 밝은 공간이 곧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라며 무릎을 친다. 또 그 공간 속에서 드러나는 것들은 하이데거가 말한 개별의 ‘존재자’를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접시꽃 시인’ 도종환의 시 세계를 놓고는 사랑을 고찰한다. ‘아내와 나는 가구처럼 자기 자리에/놓여있다 장롱이 그렇듯이’라며 부부를 가구에 빗댄 시 ‘가구’는 ‘접시꽃 당신’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저자는 ‘접시꽃 당신’의 사랑과 ‘가구’의 사랑을 비교한다. 가라타니 고진의 말을 빌려, 전자는 사회적인 것의 층위에서의 사랑이고 후자는 공동체적인 것의 층위에서 사랑이라고 풀이한다.

책은 철학을 전혀 모르는 이도 즐길 수 있도록 곳곳에 친절한 설명을 준비해 놨다. 딱딱한 말투를 버리고 학생에게 강의하는 듯한 ‘∼요’체의 서술은 친근감을 준다. 또한 각 장 뒤에 붙은 ‘더 읽어볼 책들’에서는 심화학습에 필요한 철학책과 시집을 소개한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