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야, 제발 빨간색 좀 빌려줘…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입력 2010-02-18 17:40


최인호 /처음주니어//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겨울 나그네’ ‘상도’ 등을 쓴 소설가 최인호(65)씨의 동화집이 나왔다. 오래 전 어린이 신문에 실렸던 글들을 모았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에게 보내는 사랑과 격려의 마음이 담겨 있다. 11편의 이야기 속 주인공 이름은 작가 아들의 실제 이름인 ‘도단’이다. 이름 뿐 아니라 작가는 아마도 유년시절의 아들을 유심히 관찰해 연두빛 동심을 포착했을 지도 모른다.

일곱 번째 생일에 엄마로부터 열두 색 크레파스를 선물 받은 도단이는 스케치북을 끼고 들판으로 나가 그림을 그린다. 푸른 들판, 파란 하늘, 벙글벙글 웃고 있는 해님 등을 그린 뒤 마지막으로 들판에 핀 꽃들을 그리던 도단이는 깜짝 놀란다. 빨간 꽃을 그리려는데 빨간색 크레파스가 보이지 않았다. 도단이는 곰곰이 생각하다 과수원으로 달려간다.

빨갛게 익은 사과에게 빨간색을 조금 빌려달라고 부탁하지만 사과는 “나는 빨간색으로 익어야만 사람들이 좋아한단다. 빨간색을 빌려주고 나면, 사람들이 나를 거들떠도 안 볼 거야”라며 거절한다. 원숭이의 빨간 엉덩이를 생각하고 동물원으로 달려가지만 원숭이도 살점을 떼어 주는 게 아프다며 역시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서쪽 하늘을 곱게 물들이는 저녁 노을과 빨간 신호등에게서도 빨간색을 빌려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도단이는 낙담하지만 마지막으로 찾아간 무지개로부터 빨간색을 빌리는 데 성공한다. 무지개의 빨간색 한 조각을 떼어내 완성한 도단이의 그림에서는 밤마다 예쁜 무지개가 떠오른다.

도단이는 일 때문에 항상 피곤하다고 말하는 아빠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꽃을 가꾸고,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해 주며 눈 깜짝할 사이에 이를 뽑아주던 할머니를 그리워한다. 오해로 사이가 멀어진 단짝 친구 병태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외계인 이티와 친구가 되기도 한다.

암으로 투병 중인 작가는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뛰고 있다”며 “우리의 미래이며 바다인 아이들이 ‘작은 어른’이 아닌 ‘어른들의 아버지’로 자라 주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고 말했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