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 ‘대어’ 대우건설 삼키나

입력 2010-02-17 20:55


“아직도 배가 고프다.”

STX그룹이 대우건설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STX의 영역 확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가 재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최종 인수까지는 많은 과제가 남아 있지만 STX가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할 경우 재계 판도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STX의 확장세가 무서울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위기에 몰린 직접적 계기가 대우건설 인수였던 점을 감안할 때 STX로선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기회인가 위기인가?=STX는 지난해에만 건설·플랜트 분야에서 143억 달러를 수주했다. 주력 분야인 조선부문 수주액(26억 달러)보다 5배가 넘는 규모다. 지난해 12월 아프리카 가나에서만 100억 달러 규모의 주택건설사업을 따냈다. 선박 한 척을 건조할 때보다 적게는 수십 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에 이르는 건설·플랜트 사업의 수주 규모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STX 관계자가 “대우건설을 인수하면 해외 건설 및 플랜트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대우건설 인수는 기회이자 위기”라고 말했다.

여기에 STX그룹이 5년 전부터 건설·플랜트 분야를 미래성장사업으로 삼고 준비해가는 과정에서 ‘대어’인 대우건설이 M&A 시장에 나온 상황을 지나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STX가 현재 3조6000억원가량의 ‘실탄(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유력한 인수 검토 배경으로 꼽힌다. STX가 대우건설의 전략적투자자(SI)로 참여할 경우 지분 15%를 인수하는 데 1조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선결과제는 무엇인가?=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매입할 당시 제시했던 풋백옵션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재무적투자자(FI)와 협상 중인 사안으로 이 문제가 마무리되는 다음달부터 인수 작업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우건설 FI는 지분을 1만8000원에 팔고 당초 풋백옵션 행사 가격과의 차이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를 두고 산은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자를 물리치는 것도 과제다. 현재 STX 외에 동국제강도 대우건설 인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또 지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미국 TR아메리카컨소시엄(TRAC)도 대우건설 인수를 재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산은 관계자는 17일 “아직까지 각자의 의지에 불과하다”며 선을 그었다. 인수 작업을 성급하게 추진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로 보인다.

STX그룹 관계자도 “대우건설 인수 여부와 관련해 너무 앞서간 얘기가 많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아직 대우건설 채권단과 FI 간 협상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우건설 노동조합은 STX가 SI 자격으로 인수를 검토한다는 소식에 “명백한 특혜”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우건설 노조는 보도자료를 내고 “3조원의 매각대금 중 1조원만 내면 대우건설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건 전체금액의 67%를 산은이 제공해주겠다는 것으로 명백한 특혜”라고 주장했다.

박재찬 최정욱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