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무 심게 해줄 테니 쌀 내놔라는 北
입력 2010-02-17 18:41
사회통합위원회(사통위)가 지난달 북한 나무심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북한이 나무를 심게 해주는 대가로 쌀과 비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아시아태평양위원회가 사통위에 함께 조림사업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고, 통일전선부 부부장도 최근 베이징에서 우리 정부와의 접촉을 타진했다고 한다. 남이나 북이나 일의 추진 경위가 바르지 않다.
나무를 심게 해 줄 테니 쌀과 비료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주객(主客)이 바뀐 일이다. 먼 훗날 결실을 거둘 나무심기 사업보다 당장 먹고 살려면 쌀과 비료가 더 급한 게 게 북한 사정이라 하더라도 분별은 있어야 한다. 나무심기 사업도 북한을 위한 일인데 이를 마치 선심 쓰듯 대가를 요구하다니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벌거벗은 북한 땅을 녹화하는 일은 통일 후를 생각할 때 가능하다면 일찍 시작하는 게 좋다. 그러나 북한에 대가를 주면서 해야 할 일은 아니다.
고건 사통위 위원장이 북한 나무심기 사업을 10대 프로젝트 중 하나로 선정했을 때부터 논란이 일었다. 한국사회의 통합을 고민해야 할 사통위의 과제로서 적절하지 않고, 조총련이 올해 ‘주력 과업’ 중 하나로 ‘북한 나무심기 운동’을 들고 있는 것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곧바로 나무심기 사업을 녹색성장위원회로 이관하고 북핵 문제 및 남북관계의 진전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북한의 산이 민둥산이 된 것은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는 낙후된 경제가 그 원인이다. 가로수까지 잘라 땔감으로 쓰고, 산꼭대기까지 계단식 논밭으로 일군 결과 큰 비만 오면 홍수가 일어나 농사를 망친다. 2008년 북한의 산림면적 899만㏊ 가운데 나무가 없는 황폐림 면적은 284만㏊로 전체의 32%다.
북한의 자급자족형 경제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나무를 심어도 성장하기 전에 땔감으로 잘려나갈 게 뻔하다. 경제가 그 모양인데 노동신문은 김정일 68회 생일 기념 사설에서 “이 세상 끝까지 장군님만을 굳게 믿고 따라야 한다”고 했다. 애초에 사통위가 나무심기 사업을 꺼내 북한을 헛물켜게 한 게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