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CEO 리더십-(3) LG그룹 창업주 연암 구인회 회장] 이헌조 전 LG전자 회장 ‘내가 기억하는 연암’

입력 2010-02-17 18:13


1965년 늦은 봄이었던가. 일본 도쿄사무소 개설을 준비하면서 임시로 TV 방송국 경영을 거들고 있던 나는 어느 날 저녁 서울 신당동에 있던 연암 구인회 창업회장의 자택을 찾아뵈었다. 두 사돈이 합작으로 하던 TV 방송국 운영에 양 당사자 간 의견이 대립돼 심한 갈등을 빚고 있을 때다.

그 저녁 때 창업회장 말씀에서 나는 처음으로 올바른 경영자의 마음가짐을 엿듣고 평생 마음에 새겼다. “헌조야, TV 사업 그냥 넘겨줄란다. 나중에 나 죽고 나서 손자놈들이 제 할애비 외할애비가 사업 때문에 서로 싸웠다고 들으면 뭐라 하겠노? 그만 말란다”라고 하셨다. 사후에 손자의 평가를 염려하시는 그 마음은 곧 창업하신 사업이 도덕적인 하자 없이 영속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닦는다는 말씀이요, 그것이 창업가 정신의 덕목 제1호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정부가 무기 국산화를 촉진하기 위해 국방부 산하 각 공장을 민간에 불하하고자 하는데 업종의 유사성으로 금성사가 병기창을 맡아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 중역회의에서 보고됐다. 대단한 기회였다. 중역들의 의견은 해보자는 분위기였다. 가만히 자초지종을 듣고 있던 회장이 하신 말씀은 짤막했지만 단호했다.

“앗다 마, 나는 사람 죽이는 물건 안 만들란다. 마, 그만해라.” 그때 우리는 해야 할 사업과 해서는 안 될 사업을 가려서 생각하는 공부를 한 셈이다. 이 두 이야기만 가지고 생각하면 연암 창업회장은 강하게 하겠다는 것보다는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이 더 많은 듯 보이나 결코 그렇지 않다. 창업가로서 나는 그렇게 새 사업에 집착하고, 강한 의지로 추진하고, 멀리 내다보는 분을 달리 본 일이 없다.

구씨 가문은 아주 대가족이다. 그래서 이 댁에서는 설에 애들에게 세뱃돈 주는 규칙을 정해둔다고 한다. 진학 전 아동은 얼마, 초등학생은 얼마, 중학생은 얼마라는 식으로 금액을 정하고 또 어른들은 그 지위와 능력에 따라 내는 수준을 정해 엄격하게 지킨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정표에 금액 기준을 둔다는 것은 몰인정한 것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이렇게 합리적으로 정해둬야 모든 가족의 불만이 없고 협조가 잘 된다는 것이다. 이 합리성이 곧 LG의 ‘인화(人和)’란 기업 이념 기초가 되었다.

사람을 아끼고 부하의 말을 귀담아 듣는 자세는 경영자의 귀감이었다. 성품은 좀 급하고 강직해서 선뜻 접근하기 힘든 듯 보이지만 속은 참 인자한 분이었다. 판단이 매우 빠르고 결단력이 강하셨다. 지금 LG가 전개하고 있는 사업 영역 대부분을 그 전에 그 씨를 다 뿌려 놓으셨으니 놀랄 만한 일이다. LG가 우리나라 경제개발 초기에 국산화 제1호 제품들을 제일 많이 낸 기업으로 성공한 힘이기도 하다. 연암 구인회 창업회장은 우리 한국 기업 경영사에서 ‘선비 경영인’의 뚜렷한 본보기를 보였다.

이명희 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