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태원준] 최현미, 김연아
입력 2010-02-17 19:49
얼마 전 TV 지상파 채널에서 정말 오랜만에 권투경기를 봤다. WBC 여자 페더급 세계챔피언 최현미(20)와 일본챔피언 쓰바사 덴쿠(26)의 타이틀 매치. 평양에서 온 ‘탈북소녀’ 최현미는 새로운 인생을 찾아 글러브를 꼈고, 쓰바사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링에 올랐다. 퉁퉁 부은 얼굴로 사력을 다하는 두 선수의 경기를 본 것은 권투 중계방송이 아닌 MBC 오락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다.
1970∼85년 MBC에선 일요일 저녁마다 프로권투 경기가 방송됐다. ‘MBC 권투’는 국내 방송 최초의 특정종목 전문 프로그램이었다. 외국에서 챔피언 먹으면 광화문 카퍼레이드가 열리던 때, 홍수환 유제두가 링에 오르는 날엔 거리가 한산해지곤 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프로야구 프로축구에 팬을 빼앗기더니 86년 ‘MBC 권투’마저 폐지됐다. 이후 TV에서 권투 중계 보기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최현미는 열세 살이던 2003년 평양 김철주사범대학 권투양성반에서 베이징올림픽을 겨냥해 권투를 시작했다. 이듬해 가족과 함께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서울로 왔다. 운동이 힘들어 ‘서울 가면 열심히 공부해야지’ 했는데 교육과정이 너무 달랐다. 부모님도 사회 적응이 쉽지 않아 형편이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글러브를 낀, 전형적인 ‘헝그리 복서’다.
2007년 프로세계에 뛰어들어 1년 만에 세계챔피언이 됐지만 방어전 치를 비용이 없었다. 스폰서를 찾지 못해 챔피언 벨트가 박탈될 상황에서 윤승호 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 교수가 프로모터를 자처했다. 그의 아내 김미화(방송인)씨는 무한도전 출연을 주선했다. 최현미는 무한도전에서 개그맨들과 스파링하며 고마워했다. 권투를 계속 하기 위해 필요한 ‘관심’을 보여준 사람들이었다.
최현미와 동갑내기 김연아는 지금 캐나다에서 훈련 중이다. 20일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밴쿠버에 입성한다.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 지난해 12월 이후 언론 접촉을 차단했다. 그래도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에 큼지막한 기사가 두 차례나 실렸다. 신문은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지난 수십년간 그처럼 강력한 우승후보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김연아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된 9개 후원사는 삼성전자 현대차 대한항공 국민은행 나이키 등 쟁쟁한 기업들이다. 올림픽 중계방송을 보면 스키점프, 스피드스케이팅에도 광고마다 김연아가 등장한다. 모델로 촬영했거나 그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담겼거나. 한 포털사이트는 아예 ‘김연아 응원 코너’를 만들어 밴쿠버행 항공권을 경품으로 응원문구 공모에 나섰다.
이런 ‘관심’은 김연아가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 됐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뉴욕타임스에 “연아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고 금메달을 기대하는지 잘 안다. 그래서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선 외출 한 번 하려 해도 변장에 보디가드를 대동해야 하지만 캐나다에선 알아보는 이가 적어 자유롭게 훈련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가장 큰 걱정은 긴장하는 것… 설령 금메달을 못 따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겠다.” 신문이 인용한 김연아의 말에서도 그가 느끼는 부담은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 “무관심이 서운했지만 부담이 없어 편하게 탔다”는 스피드스케이팅 500m 금메달리스트 모태범을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똑같이 1990년 태어나 비슷한 기간 눈물 섞인 땀을 흘리고 정상에 올랐다. 해맑게 지어보이는 미소마저 닮은 두 소녀에게 사람들의 ‘관심’은 이처럼 정반대 의미를 갖는다. 한 소녀에겐 그토록 절실한 응원을 다른 소녀는 극복하려 애쓰고 있다. 불공평해 보이지만 이건 인기종목과 비인기종목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더 걱정되는 건 김연아다. 쏟아지는 응원의 무게만큼 만에 하나 실수할 경우 잃게 될 것도 많다. 관심이 빠져나가면 그 빈자리 또한 클 것이다. 영원한 1등은 없다. 이제 관중은 김연아가 넘어질 때도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는 이미 우리에게 충분한 감동을 줬다.
태원준 특집기획부 차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