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원교] 전통문화와 알몸 뒤풀이
입력 2010-02-17 18:13
“서원이나 향교 통해 선비 문화를 접하는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면 어떨까”
이달 초 안동으로 겨울 휴가를 다녀왔다. 한번 갔다 와야지 하던 차에 귀한 손님이 찾아온 건 좋은 핑계가 됐다. 도산서원, 퇴계 종택, 하회마을, 안동한국학연구원…. 어느 한 곳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안동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首都)라고 자처하는 까닭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안동을 대표하는 문화 유산이라면 역시 도산서원 아닐까.
도산서원은 주차장에서 앞마당까지 안동호를 옆에 끼고 걷는 오솔길이 참 수려하다. 야트막한 마을 뒷산인 도산의 품에 안긴 서원이 겨울 햇볕 아래 푸근하게 느껴진다. 서원 맞은 편 안동호 쪽으로는 비각이 물가에 덩그렇게 솟아있다. 정조가 평소 흠모하던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어명으로 특별 과거인 ‘도산별과’를 치르게 한 곳, 시사단(試士壇)이다.
퇴계가 70여회나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 연구, 인격 도야, 후진 양성에 힘써 우리나라 사상 및 교육의 큰 줄기를 이룬 건 잘 아는 대로다. 선생이 제자들의 기숙사였던 서원 내 농운정사를 공부에 열중하라는 뜻으로 공(工)자 모양으로 짓도록 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서원 정문을 지나면 오른편에 나오는 도산서당 내 샘은 몽천(蒙泉). 한 방울 샘물이 솟아나와 많은 어려움을 거쳐 바다에 이르듯 끊임없이 노력해 몽매함을 깨우치라는 뜻을 담았다.
서원 내 유물전시관에서는 뜻밖에도 천체관측기구 혼천의를 볼 수 있었다. 퇴계가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문하생에게 혼천의를 제작토록 했다는 사실은 과문한 탓으로 이번에 알게 됐다. 당시 학자들의 관심 분야가 어디까지 뻗쳐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건강은 자기 마음이 스스로 짓는 것이라고 선생이 활인심방(活人心方)에서 강조한 대목도 가슴에 닿았다.
도산서원을 참관하기 전 하룻밤 머물렀던 퇴계 종택 부근에 위치한 한서암. 퇴계가 1550년 관직을 떠나 고향에 자리잡으면서 초가삼간으로 지었다. 선생은 이곳에서 운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겨울 밤 뜨끈뜨끈한 온돌 위에서 일행과 윷놀이 한 판을 벌이니 그 정취가 괜찮았다. 마침 전통문화 체험차 들른 초등학생들이 기특했다.
퇴계 종택 옆에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을 새로 짓고 있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올 가을이면 다례실습, 전통제례행사, 활인심방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 체험관과 강의실, 숙소 등을 갖춘 2층 한옥이 들어서게 된다. 이 수련원은 퇴계 탄생 500주년이던 2001년 11월 설립됐지만 그동안 안동시 운흥동에서 교육공간을 빌려 사용해왔다. 학생, 교원, 기업체 직원, 공무원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중고등학교 졸업 시즌을 맞아 유별난 ‘졸업빵’이 극성을 부리더니 마침내 알몸 뒤풀이까지 등장했다. 경찰은 수사에 나섰고 교육 당국은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산하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한 진단은 다양하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욕구를 학교가 제대로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고 취약 계층 학생에 대한 ‘정서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을 졸업에 즈음해 배출할 수 있는 세리머니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배려와 용서만 능사가 아니라며 처벌과 계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는 졸업식을 졸업생들의 음악회 등이 펼쳐지는 졸업 발표회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이러한 일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아이들도 꽤 있어 보인다. 극단적인 과시욕에 빠진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현실에 학생들이 동화된 탓인가. 그런 만큼 이미 제시된 처방은 구체화하되 각 지역에 있는 서원이나 향교를 통해 선비 문화 등을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건 어떨까. 학교나 기업 단위뿐 아니라 가족끼리도 전통과 예절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우리는 빛나는 선조의 유산을 왜 잊고 지내는 것일까.
정원교 카피리더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