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언덕서 돈키호테를 만나다

입력 2010-02-17 18:07


‘유럽-아랍 문화의 교차로’ 스페인

◇중세의 도시 톨레도=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70㎞ 떨어진 톨레도는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도. 서기 711년부터 약 400년간 아랍의 지배를 받은 톨레도는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스 6세에 의해 수복되어 발전을 거듭하다 1561년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기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라틴어로 ‘바위산’이라는 뜻의 톨레도는 3면이 타호 강에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로 스페인의 사관학교가 이곳에 설치될 만큼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타호 강 남쪽에 위치한 고갯길에 서면 강에 둘러싸인 톨레도의 고색창연한 시가지가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톨레도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1227년에 착공돼 1493년에 완공된 고딕 양식의 톨레도 대성당. 하늘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인 대성당에는 조각과 그림 등 종교를 주제로 한 수많은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한 대성당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부부왕의 그라나다 정복 과정을 성가대석에 조각한 54점의 작품.

대성당의 성구실은 미술관이나 마찬가지로 엘 그레코의 ‘성의의 박탈’, 반다이크의 ‘성가족’, 고야의 ‘그리스도의 체포’ 등 거장들의 대작이 전시되어 있다. 종루 아래에 위치한 소예배당은 보물 보관실로 무게 180㎏, 높이 3m의 금 은 보석으로 제작된 성체 현시대가 황홀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성체 현시대의 중앙 장식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서 가져온 16㎏의 금으로 제작됐다고.

톨레도는 스페인의 대표적 화가 엘 그레코의 작품이 곳곳에 남아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스 출신인 엘 그레코는 1576년에 톨레도로 이주해 죽을 때까지 40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최고의 걸작이인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 소장되어 있는 산토 토메 성당은 대성당에서 도보로 5분 거리. 온갖 선물가게가 즐비한 중세의 좁은 골목길 끝에서 만나는 산토 토메 성당은 오르가스 백작이 재건했다. 벽화는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을 그린 작품으로 엘 그레코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엘 그레코가 살았던 집은 대성당에서 도보로 7분 거리로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풍차의 고장’ 라 만차=전 세계인으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는 스페인 사람은 누구일까? 세르반테스(1547∼1616)의 소설 돈키호테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주인공인 돈키호테를 꼽을 것이다. 비쩍 마른 애마 로시난테를 탄 돈키호테가 긴 창을 들고 라 만차 지방의 풍차와 싸우는 장면은 쓴웃음을 자아낸다.

아라비아어로 ‘건조한 땅’을 뜻하는 라 만차는 카스티야 지방에 속한 불모의 고원지대. 톨레도에서 일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를 타고 남동쪽으로 달리면 평지나 다름없는 라 만차의 구릉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라 만차의 황량한 들판은 올리브와 포도, 그리고 밀 경작지로 이곳의 풍차는 밀을 빻기 위해 설치한 방앗간. 옛날에는 수많은 풍차가 있었으나 지금은 풍차가 돌아가던 언덕을 풍력발전기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면 돈키호테의 풍차는 어디에 있을까. 현지 가이드는 세르반테스가 서문에서 ‘내가 확실히 어딘지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 아직도 풍차가 돌아가는 작은 마을인 캄포 데 크립타나와 콘수에그라를 돈키호테의 무대로 꼽는다. 두 마을 중 톨레도에서 가깝고 아름다운 곳은 콘수에그라 마을. 작은 언덕을 수놓은 11개의 풍차와 고성이 수백년째 마을을 지키고 있다.

콘수에그라의 풍차는 멀리서 보면 장난감처럼 앙증맞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원근미가 살아나 라 만차의 언덕을 캔버스로 삼은 거대한 그림처럼 보인다. 허물어져가는 고성 아래에 위치한 풍차는 관광객을 위한 선물가게로 변신해 콘수에그라의 명물인 사프란이나 와인 등을 판매한다.

콘수에그라의 풍차는 언덕 위에서 볼 때 더욱 웅장하다. 고깔모자처럼 생긴 지붕에 4개의 날개가 달린 원기둥형의 풍차가 돈키호테에게는 괴물처럼 보였음직도 하다. 언덕 아래에는 붉은색 지붕이 이색적인 콘수에그라 마을이 라 만차의 황량한 들판과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밖에도 라 만차에는 ‘돈키호테의 여인숙’이라는 뜻의 벤타 데 돈키호테, 돈키호테의 ‘상상의 여인’ 둘시네아가 살고 있었다는 집과 돈키호테 도서관이 위치한 엘 토보소, 세르반테스가 투옥되었던 아르가마시야 데 알바, 10여개의 풍차로 유명한 캄포 데 크립타나 등 돈키호테와 관련된 마을들이 몇 곳 있다. 로시난타 대신 자동차를 타고 둘러보는 돈키호테의 마을인 셈이다.

톨레도=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