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달루시아의 보석’ 발길 잡고 옛 전설을 들려주다

입력 2010-02-17 18:02


유럽-아랍문화의 교차로 스페인

집시와 투우, 그리고 플라멩코의 고장 스페인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아프리카와 유럽으로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 침략을 받아왔다. 기원전에는 페니키아 카르타고 로마의 침략을 받았고, 기원후에는 서고트와 아랍의 지배를 받으면서 독특한 문화를 가꿔왔다. 아랍 세력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과 돈키호테의 풍차로 유명한 라 만차, 그리고 화가 엘 그레코가 활동했던 톨레도를 찾아 그 이색적인 문화의 일단을 엿본다.

‘정해진 날 밤이 다가왔다. 공주들의 탑은 늘 그랬듯이 잠겨 있었고 알람브라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늙은 시녀가 밧줄 사다리의 한쪽 끝을 발코니에 단단히 묶고 한쪽을 정원 아래로 늘어뜨린 후 내려갔다. 첫째와 둘째 공주가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그녀를 따라 내려갔다. 그러나 막내 공주 조라하이다는 자기 차례가 되자 주저하며 덜덜 떨었다.’

워싱턴 어빙의 기행소설 ‘알람브라 이야기’에 나오는 ‘아름다운 세 공주의 전설’ 중 한 장면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궁전 중 하나인 스페인 남부도시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 아랍의 무어인들이 건축한 알람브라 궁전은 그라나다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릉에서 옛 전설을 들려주고 있다.

그라나다는 안달루시아에 있는 무어인들의 마지막 거점. 서기 711년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무어인들이 스페인의 부부왕에게 항복할 때까지 780여 년 동안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은 아랍문화의 중심이었다. 알람브라는 ‘붉은 성’이라는 뜻이다. 한밤에 성벽과 망루, 그리고 성안에서 반사된 횃불로 인해 마치 성이 붉게 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나스르왕조의 무하마드 1세 알 갈리브가 13세기 후반에 건축하기 시작한 알람브라 궁전은 250여 년에 걸쳐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췄다. 안달루시아의 보석으로 불리는 현재의 궁전은 대부분 14세기 때의 것으로 나스리드 왕궁, 알카사바(성채), 카를로스 5세 궁전, 그리고 그라나다 왕의 여름별궁인 헤네랄리페로 이루어져 있다.

알카사바는 24개의 탑과 군인들의 숙사, 창고, 목욕탕까지 갖춘 견고한 요새였지만 대부분 파괴되어 현재는 당시의 흔적만 찾아볼 수 있다. 알카사바의 상징은 좁고 어두컴컴한 계단을 올라가 만나는 벨라탑. 부부왕으로 유명한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이 그라나다 왕국을 패망시키고 벨라탑에 기독교를 상징하는 종을 달아놓았다. 그라나다 왕국이 패망한 1492년은 이사벨 여왕의 후원으로 콜럼버스가 산타마리아 호를 타고 신대륙인 아메리카에 도착하던 해.

벨라탑은 알람브라 궁전에서 전망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높은 성벽으로 이뤄진 궁전은 물론 그라나다 시가지와 궁전 맞은편 언덕에 위치한 알바이신 지역, 그리고 눈 덮인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알람브라 궁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알바이신 지역은 옛날 무어인들의 마을이었지만 무어인들이 떠난 후 집시들이 살았던 마을.

주인이 바뀌면 궁성도 으레 불타 없어지기 마련이지만 알람브라 궁전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라나다 왕국의 마지막 왕 보압딜이 스스로 궁성을 내놓고 퇴각하는 조건으로 궁성 보존을 요청했기 때문이란다.

왕궁 관람은 왕의 집무실인 ‘메수아르의 방’부터 시작된다. 메수아르의 방을 비롯한 왕궁의 방들은 정교하고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메수아르의 방과 연결된 ‘아라야네스 정원’은 직사각형의 연못에 아라야네스(천국의 꽃)가 심어져 있다. 스페인의 전설적 기타리스트인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유명한 기타연주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 연주된 곳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왕궁에는 외교사절들의 알현 등 공식행사가 열렸던 ‘대사의 방’, 왕의 사적 공간인 ‘사자의 정원(12마리 사자가 떠받치고 있는 분수가 있는 정원)’, 우아하고 화려한 ‘두 자매의 방’, 피비린내 나는 전설을 간직한 ‘아벤세라헤스의 방’, 세 무어인 공주와 에스파냐 기사 포로들과의 사랑 이야기가 유래된 ‘왕녀들의 탑’ 등 수많은 방들이 저마다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사자의 정원은 124개의 가느다란 대리석 기둥으로 에워싸여 알람브라의 옛 영화를 짐작하게 한다.

알람브라 궁전은 18세기 초 스페인 국왕인 펠리페 5세가 마지막으로 머문 후 퇴락을 거듭해 거지와 도둑들의 소굴로 변했다. 그리고 미국의 외교관이자 작가인 워싱턴 어빙이 1832년에 ‘여왕의 규방’에 머물며 들은 전설과 설화를 엮어 ‘알람브라 이야기’로 펴내면서 널리 알려졌다.

왕궁과 인접한 카를로스 5세 궁전은 16세기에 건축한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 부부왕의 아들로 스페인 절대 왕정의 주인이 된 카를로스 5세는 자신의 이름을 딴 견고한 성을 알람브라의 정수리에 세웠으나 결국 미완성인 채로 볼썽사납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은 정사각형의 견고한 건물로 내부는 원형으로 꾸며져 한때 투우장으로도 사용됐다. 중정을 에워싼 회랑은 2층 구조로 1층 기둥은 도리아식, 2층 기둥은 이오니아식이다.

헤네랄리페 정원은 알람브라 궁전에서 약간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왕가의 여름 별궁. 입구부터 사이프러스 나무에 둘러싸인 통로가 길게 뻗어있다. 사계절 꽃이 피고 지는 헤네랄리페는 지하에 거미줄처럼 연결된 수로를 이용한 정원.

‘건축가의 정원’으로 불리는 헤네랄리페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눈 녹은 물을 끌어들여 실핏줄 같은 수로를 만들고 측백나무의 일종인 사이프러스 등 정원수를 심고 온갖 꽃을 가꾸었다. 수많은 정원 중 별궁 안쪽에 위치한 아세키아 정원이 가장 아름답다. 특히 이곳에서 보는 알람브라 궁전과 그라나다 시가지는 한 폭의 그림.

다로강에 둘러싸여 마치 석류가 터진 것처럼 화려함을 자랑하는 알람브라 궁전은 워싱턴 어빙을 만나 다시 태어났다. 어빙은 흐릿한 공상들을 피워 올리고 과거의 장면들을 눈앞에 보듯이 떠올리게 함으로써 벌거숭이 현실에 추억과 상상으로 만들어진 환상의 옷을 입혀주는 것이 알람브라 궁전의 독특한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알라브라 궁전은 스페인 정부의 복구 작업으로 화려했던 옛 모습을 되찾았다. 퇴락한 알람브라가 환상을 만들고 환상이 번성했던 알람브라를 복구했다고나 할까. 마법에 걸린 공주처럼 신비로운 알람브라 궁전이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배경으로 안달루시아의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그라나다(스페인)=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