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로 삶 개척하는 ‘꿈마을’ 장애인들 “백혈병 환아들에 희망 줄거예요”
입력 2010-02-16 18:43
방금까지 상체를 좌우로 휘젓고 고개를 까딱이던 뇌병변 1급 장애인 박근영(47)씨가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더니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의 저격수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등받이 의자에 빨간색 방석을 깔고 앉아 숨을 멈추고 바짝 마른 맨발만 천천히 움직였다.
박씨는 오른발 첫째·둘째 발가락으로 가느다란 붓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쌀 한 톨만한 붓끝은 엄지손가락만한 나무 모양 동판 위에 갈색과 녹색 물감을 번갈아 칠했다. 정교했다. 박씨는 칠을 마치고서야 굳은 몸을 풀고 얼굴을 들었다. 7000원짜리 칠보공예 열쇠고리 한 개가 완성됐다.
16일 오전 서울 상계동 시립뇌성마비복지관 지하 1층 59.5㎡(18평) 크기의 작업실은 칠보와 점토로 공예품을 만드는 30∼50대 뇌성마비 장애인들로 활력이 넘쳤다. 손놀림은 빠르지 않았지만 장애가 문제되지 않을 만큼 솜씨는 능숙했다. 그들의 어머니와 복지관 직원들이 일부 작업을 도왔다. 작업실 입구 벽면에 걸린 팻말에는 ‘꿈을 일구는 마을’(꿈마을)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꿈마을은 복지관이 운영하는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뇌성마비 장애인 9명이 이곳에서 도자기와 칠보 공예품을 만들어 팔며 삶을 개척한다. 사회적 기업은 비영리 조직과 영리 기업의 중간 형태로 사회적 목적을 좇으며 영업 활동을 하는 기업이다. 예비 사회적 기업은 그 준비 단계다.
“장애인 가운데 뇌성마비 장애인이 직업을 갖기가 가장 힘듭니다. 대부분 중증이고 중복장애인이거든요. 하지만 저는 이들에게 ‘장애인이라도 땀 흘려 번 돈으로 떳떳하게 살자’고 말합니다.” 꿈마을 사업을 벌인 복지관 정행건 관장이 말했다. 정 관장은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줘 자립 동기를 고취시키고 꿈마을을 장애인 최초의 사회적 기업으로 정착시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꿈마을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4대 보험에 가입된 정식 직장인이다. 월급 93만2000원 가운데 4대 보험료를 빼면 70만원 정도 손에 쥔다. 도자기공예팀 강의형(41)씨는 지난 설날 처음으로 부모에게 10만원씩 용돈을 드렸다. 강씨의 어머니 최집선(64)씨는 “생각도 못한 용돈을 받고 놀랐어요. 그동안 마흔 살이 넘도록 우리가 매달 15만원씩 용돈을 줘왔는데…”라며 당시 감격을 전했다.
장애인들은 손수 만든 보석함, 수저받침대, 연필꽂이, 화분, 휴대전화 장식품, 열쇠고리, 브로치 등을 5000∼5만원에 판다. 학교마다 졸업식이 열리는 이달 말에는 인근 대학에 가서 공예품을 팔아볼 계획이다. 17일 경희대, 19일 서울여대, 22일 동덕여대, 26일 한국외대 순으로 찾아간다.
꿈마을 근로자들은 백혈병 어린이들과 희망을 나누기로 했다.
복지관 박미순 직업재활팀장은 “각자 ‘힘내라’ 같은 응원 문구를 새긴 화분을 만들어 1대 1로 전달키로 하고 대상을 물색 중”이라며 “병상에 있는 아이들과 희망을 나누고 용기를 북돋우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김민정 대학생 인턴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