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경] 여자가 원하는 것은

입력 2010-02-16 18:10


대학 때 ‘여성학개론’ 교양수업을 듣던 중 있었던 일이다. 교수님은 강의를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다음 생애에 태어나거든 여자로 태어나고 싶은가, 남자로 태어나고 싶은가. 그리고 그렇게 대답한 이유는 무엇인가?’ 무기명으로 작성해서 제출하라는 말에 학생들은 제각기 솔직한 주장을 담아 제출하였다.

한 남학생은 여자로 태어나서 이 세상의 모든 남자를 유혹시켜 버리겠다는 강한 포부를 밝혔다. 이유는 남자로 살아봤으니 어떻게 행동했을 때 남자가 좋아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여학생은 많은 여성들로부터 사랑받고 싶기에 남자로 태어나서 일부다처제 국가로 바꿔버리겠다고 했다.

글을 다 읽은 교수님은 한 학생의 글을 소개하고는 손을 들게 하였다. “‘난 다시 태어나도, 또 다시 태어나도 여자가 좋습니다. 여자인 것이 재미있고 즐거우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쓴 당찬 학생이 누구죠?” 나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여성을 아주 즐겁게 잘 활용하고 있는 학생”이라며 교수님이 한바탕 웃는 바람에 나도 멋쩍게 따라 웃은 적이 있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여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우리 각자가 여자로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질문한 것이다. 내 주변의 친구들같이 남성으로부터 보호받기를 간절히 원하는가, 아니면 나처럼 개인의 발전을 우선한 홀로서기를 원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원할 것이라 본다. 남성으로부터 사랑받고, 나 자신 또한 성공하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중적 잣대는 현실의 장벽 앞에서 우리들의 역할과 정체성을 여전히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사회구조적으로 여성들의 맞벌이가 당연시되고, 여성들 또한 자신의 일을 갖고 성공하길 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육아와 가사 책임에서 남성보다 더 자유롭지 못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는 여성이 남성들과 똑같이 근무하기를 기대하고, 가정에서는 좀더 가정적이고 사랑스러운 아내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여자들은 이 모든 상황에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자기발전을 위한 혼자만의 시간도 가지지 못한 채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며 서로의 역할과 책무에 대해 논쟁하는 것은 지루하다. 여자든 남자든 독립적인 인격체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한 면을 다른 이성을 통해 보상받거나 인정받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성숙한 자아’로 스스로 채워나가는 것이다. 그런 뒤 상호 관계하고 교감한다면 지금보다 더 성숙하고 지속 가능한 남녀관계가 만들어질 것 같다.

여성들은 다른 어떤 것에 종속되어 있기보다 자기 안에서 충만했으면 좋겠다. 사랑받길 원하기보다는 사랑할 줄 알면 더욱 좋겠다. 그리고 다음 생애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져도 난 여전히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이혜경(한국아동복지협회 기획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