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상장폐지 피하려는 분식회계 이뿐일까

입력 2010-02-16 18:14

국내 10위권의 대형 회계법인이 기획·실행한 희대의 분식(粉飾)회계 사건이 적발됐다. 회계법인 화인은 2008년 5월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있던 S사가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허위 재무제표 작성을 주도했다.

문제는 회사 자금을 유용한 S사의 대주주 이모씨가 1억1000만원의 뇌물과 함께 화인에 분식회계를 의뢰한 데서 비롯됐다. 이에 당시 화인의 백모 이사는 전담팀까지 만들어 각종 계약서를 위조해 31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제로로 만들었다. 발단은 S사였지만 재무제표 감사·평가 책임을 맡은 화인이 동조한 게 더 큰 문제였다.

여기에는 화인의 부실 감사 전력이 작용한 듯하다. 화인은 2006년 S사의 회계감사에서 ‘적정’ 의견을 냈다가 2008년 4월 ‘의견거절’로 평가를 바꿨다. 당시 다른 회계법인이 S사 자회사의 분식회계를 밝혀냈기 때문이다. 회계감사 평가를 ‘적정’에서 뒤늦게 ‘의견거절’로 바꾼 만큼 화인은 S사 투자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우려해 S사 분식회계에 적극 뛰어들었다. 잘못을 감추려고 더 큰 잘못에 동조한 격이다.

공인회계사들이 뇌물을 받고 회사 측 장부 조작을 눈감아주는 소극적 분식은 종종 있다. 하지만 회계법인이 직접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9월 화인에 6개월 업무정지를 명령했다. 부실 감사로 회계법인이 업무정지를 받은 것은 2000년 대우사태 때의 산동회계법인 이후 처음이다.

이번 분식에는 화인 소속 회계사를 비롯해, S사 의 회계사 변호사 채권자 등이 참여했다. 전문직 종사자들의 총체적 도덕적 해이다. 그 때문에 일찌감치 퇴출됐어야 할 S사가 몇 년씩이나 더 연명했다. S사는 2009년 4월 상장폐지 및 부도 처리될 때까지 1569억원어치의 주식이 거래됐다니 투자자들의 손실이 적지 않을 듯하다.

코스닥시장에서 상장폐지를 피하려는 분식회계가 더 없는지 모를 일이다. 차제에 감독당국은 물론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의 각성이 요청된다. 아울러 회계법인의 자격기준 강화와 더불어 전문직 비리에 대한 처벌수위를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