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기념사업 무산 위기… 친필 악보 문화재 등록 ‘흐지부지’
입력 2010-02-16 21:51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추진되던 윤이상(1917∼95) 선생의 친필 악보에 대한 근대문화재 등록사업이 현 정부 들어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드러났다. 윤이상이 독일 베를린에서 작곡한 수고(手稿) 악보는 문화재청이 문화재 등록을 위해 2007년 현지답사를 거쳐 이듬해 보고서까지 발간했으나 정권이 바뀐 이후 손을 떼고 있는 실정이다.
윤이상 악보의 문화재 등록은 2007년 9월 13일 노 전 대통령이 윤 선생의 아내 이수자 여사를 면담한 후 “선생의 작품을 정부가 책임지고 보존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도 유족 및 윤이상평화재단 관계자를 만나 윤이상 악보를 문화재로 등록하는 방안에 힘을 보탰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2007년 말, 이만열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위원장,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홍은미 국제윤이상음악상 운영위원 등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을 베를린 윤 선생 자택에 보내 악보 현황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단은 58년부터 94년까지 윤 선생이 작곡한 악보 112편과 유품 등을 확인하고 사진촬영과 함께 보존상태를 일일이 기록했다. 문화재청은 이듬해 2월 29일 ‘작곡가 윤이상 선생 수고 악보 문화재 등록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16일 본보가 입수한 보고서는 “윤이상 선생은 동양의 사상과 정서를 서양의 기법으로 음악 속에 담아낸 훌륭한 작곡가이며, 조국의 분단을 극복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한 예술가”라는 찬사와 함께 그의 악보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져 작성됐다.
보고서는 “육필에 의한 수고는 작곡가의 정신적 흔적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그 역사적 사료적 가치는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1992년 한국 태생으로는 유일하게 20세기를 빛낸 유럽에 현존하는 5대 작곡가로 선정(함부르크예술원)된 윤이상 선생의 수고를 문화재로 등록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윤이상 악보의 문화재 추진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윤 선생의 생전 친북 성향이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윤이상평화재단 장용철 이사는 “독일은행에 보관돼 있는 윤이상 선생 악보 100여편과 유품 등을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재로 지정하겠다는 보고서까지 냈는데 현 정부 들어 모두 뒤집어졌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이에 대해 “보고서 발간 후 독일에 있는 윤이상 악보의 국내 반입을 수차례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아 진전이 없는 상태”라며 “윤이상 악보 문화재 등록은 지금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지난해 11월 통영시가 윤이상 유품 400여점을 인수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등 무관심을 드러냈다.
“그토록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인데 윤이상 유품이 국내 들어온 사실도 모르고 있다니 말이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문화재청 관계자는 “통영시에서 아무 얘기가 없어 잘 모르고 있었다. 지방의 일을 우리가 어떻게 일일이 알 수 있느냐. 통영시에서 문화재 등록을 신청해오면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검토할 사항”이라고 답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