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으로 빚은 그릇, 삶 속에 어우러지게”… 도예가 김춘헌 2월23일까지 인사동 통인갤러리서
입력 2010-02-16 17:58
경남 언양의 가지산 자락에서 작업하는 도예가 김춘헌(51)은 설을 앞두고 장작가마에 불을 지폈다. 1300도가 넘는 불꽃을 지켜보면서 그는 기도했다. “지금 여기에 흙과 바람과 불을 올려 놓습니다. 무심으로 빚어낸 그릇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사람들의 삶 속에서 함께 어우러지게 하소서.” 그렇게 빚어낸 ‘언양요’를 17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인사동 통인갤러리에서 선보인다.
회령식으로 빚어낸 찻잔, 분청사발, 화병 등 출품작들은 자연과 더불어 묵묵하게 작업에만 몰두하는 작가의 성품대로 소박하면서도 인간미가 물씬 묻어난다. 회령자기는 함경도 회령 지방 사기장들이 임진왜란 때 왜군에 붙들려 가서 일본에 정착해 구운 그릇이다. 작가는 깊은 산에서 흙과 돌멩이를 캐고 풀과 볏짚을 태우고 걸러내 유약을 입힌 후 소나무 장작으로 회령식 자기를 만들어낸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자신의 작품을 ‘하늘이 내려준 사발’로 명명하는 작가는 젊은 시절 곳곳을 떠돌며 분재와 묘목을 가꾸는 등 돈 안 되는 일에만 시간을 보냈다. “20대 때 분재를 배우기 위해 간 곳에서 차를 내오는데 농촌의 가을풍경 같은 찻사발을 접하면서 제 인생이 달라지게 됐습니다. 도자기를 만들고 싶었고 양산 통도사 부근 신정희 선생의 문하에 들어갔지요.”
그의 ‘언양요’ 작업장이 있는 가지산에는 수없이 많은 백자 도요지와 질그릇 도요지가 산재해 있는데 근처의 낡은 집을 거친 비바람이 못 헤치도록 폐타이어와 돌로 지붕을 단단히 눌러 놓았다. 겨울밤이면 태풍수준으로 바람이 몰아치기 때문이다. 설을 앞둔 지난 12일에는 폭설이 내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했다. 그런 중에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작품들을 빚어냈다.
이번 ‘김춘헌 우리그릇 전’에서 작가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존되지 않은 개발현장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아파트 공사장이나 도로 공사장에서 퍼온 점토로 그릇을 빚어 전시하기도 한다. 생명력을 불어넣는 그의 작품에 대해 이창희 시인(목사)은 “흙에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까지/한 줌 흙덩이에 불어넣는 그대 숨결/거듭난 생명으로 영원하라”고 노래했다.
작가는 “한국미와 인간미가 묻어나는 조선 초기의 백자를 지속적으로 빚어 우리 그릇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빛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02-735-909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