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孔子와 南子

입력 2010-02-16 18:50

중국 정부가 영화 흥행 세계기록을 갈아치운 ‘아바타’의 상영을 제한하면서까지 밀어붙인 국책(國策) 영화 ‘공자(孔子)’. 영화와 사실이 다른 대목들을 지적하며 불만스러워하는 중국인들이 있는데 그 중 으뜸은 “공자가 제갈공명이냐”는 항의다.

공자는 노(魯)나라와 제(齊)나라의 정상회담에 배석해 제나라의 잘못을 지적하며 기발한 계략으로 빼앗긴 땅을 돌려받는다. 각료회의에서는 교묘한 대화술로 반대자를 제압하고, 군벌의 반란을 가차없이 진압했다. 오(吳)나라 신하들의 반대를 논파하고 촉(蜀)과의 동맹을 성사시키고, 조조를 물리친 뒤 형주를 독차지한 제갈공명의 신산(神算)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다.

영화답게 과장법이 심하지만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 뛰어들어 이상국가를 세우려 했던 정치가 공자의 진면목이 후대의사서삼경(四書三經)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설 연휴에 영화를 보면서 망외(望外)의 소득이 있었다. 위(衛)나라로 망명한 공자가 군주의 부인 남자(南子)를 만나는 대목에서다.

미모와 지혜를 겸비했으나 음행(淫行)이 있는 걸로 소문난 남자는 공자에게 자신을 찾아오도록 강청(强請)하여 뜻을 이룬다. 남자는 겉돌지 않고 벼르던 질문을 공자에게 바로 찌른다. 공자의 턱밑에 예쁜 코를 들이대고서 시경(詩經)에 나오는 ‘요조숙녀 군자호구(窈窕淑女 君子好逑)’의 뜻을 물었다.

‘정숙한 여인은 군자의 좋은 배필’이라는 시를 묻는 아름답지만 음란한 여인에게 공자는 “정은 깊고 깊지만 삿된 생각은 없다(情思深深 而沒有邪念)”고 대답한다. 공자가 시삼백(詩三百)을 한마디로 “사무사(思無邪)”라고 이른 바로 그 말이다. 영화는 이 말을 공자와 남자의 문답을 통해 재해석했다. 그 결과 원래 남녀 간의 정과 이별을 읊은 노래였으나 후대에 건전가요로 덧칠된 경전(經典) 속의 시들이 본래 자리를 찾았다.

‘영화 공자’는 ‘삼국지연의’처럼 사실이 일곱, 허구가 셋쯤이다. 그 때문에 더 흥미가 있다. 공자가 남자를 만났다는 기록은 ‘논어’에도 나오지만 ‘사기’ 공자세가(世家)에 그 정황이 자세하다. 중국학자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는 사마천이 당시 공자의 전기를 다룬 치졸한 소설류가 있어 이를 옮겼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거기에도 위와 같은 대화는 없다. 영화는 소설에 없던 생기를 불어 넣었다. 대화는 남자의 말로 마무리된다. “세상 사람들이 당신의 고통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당신이 고통 속에서 도달한 깨달음의 경지까지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