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 바이블] 보는 것과 보아야 할 것
입력 2010-02-16 17:50
진짜 같은 아바타보다 삶의 진실 직시해야
영화 ‘아바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제 좀 가라앉는 모양이다. 한동안 아바타의 범신론 혹은 자연신 사상과 인종주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고,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비판하는 정치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남은 것은 흥행기록 경신과 입체영상기술에 대한 경탄과 기대다. 이런 과정은 일면 자연스럽다. ‘아바타’ 열풍은 지나갈 것이고, 남는 것은 영화의 판도를 바꾼다는 입체영상기술이다.
입체영상기술에 대한 반응도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극장을 나오며 방금 본 컴퓨터그래픽 기술(CG)을 평가하느라 바쁘다. 현대의 관객들은 이제 영화의 줄거리와 장면만이 아니라 영화에 사용된 기술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입체영상기술 때문에 가상세계와 현실을 혼동하는 사람이 생길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고, 이 기술의 오용을 통해 생겨날 문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것은 기술 자체보다는 그 표면적인 결과들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미디어 사상가인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라고 했다. 이 말은 의사소통의 중간 역할을 하는 미디어가 바뀌면, 삶의 방식과 맥락, 그리고 사고의 내용이 바뀌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휴대전화와 같은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생겨난 생활의 변화를 생각한다면 이해하기 쉽다. 입체영상기술 역시 단순히 이전에 평면으로 보던 것을 입체로 보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나아가서 ‘본다’는 것의 정의와 의미 자체를 바꾸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바타’에 나오는 “나는 당신을 봅니다(I see you)”라는 나비족의 인사가 못내 흥미롭다. 누가 누구를(무엇을) 어떻게 보는가? ‘본다’는 것의 의미는 뭘까? 나비족의 여전사 ‘네이티리’가 보는 것은 지구인 ‘제이크’ 자신이 아니라 그의 뇌와 연결된 나비족 모양의 아바타이다. 그들은 수없이 “당신을 본다”고 하지만 사실은 무엇을 보는지 헷갈리는 상황이다. 그러나 영화는 둘의 사랑이 지속되게 함으로써 그 허상들 속에서도 진실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허상과 진실을 오가는 것은 입체영상용 안경을 쓰고 평면의 영상을 입체로 보는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우리는 실재를 보는 것이 아닌 고도의 기술로 유도된 착시현상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 영상이 사실적이기 때문에 즐겁다. 이런 기술은 곧 TV와 컴퓨터게임 등으로 옮겨와 현실보다 더 생동감 있는 오락의 경험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술들이 영화 속 여주인공 네이티리에게처럼 우리에게도 사랑과 진실을 경험하게 만들어 줄 것인가? 우리는 더 행복해질 것인가?
입체영상기술로 만들어진 영화를 즐기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을 터이다. 그러나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인들은 ‘나는 무엇을 보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으면 좋겠다. 이 기술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즉 이것이 우리 삶의 양식과 짜임새를 어떻게 바꿀 것이며 어떤 변화를 초래할 것인지를 상상하려 애써야 한다.
‘아바타’ 열풍 가운데 잊혀지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는, 진짜 같은 가짜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집착과 욕망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욕망의 성취를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이며 잃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디까지 추구하고 제어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진실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2000여 년 전 예루살렘에 살았던 사람들 중 예수님의 고난을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는 것처럼 바로 옆에서 지켜본 이들은 몇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영화의 사실성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참으로 간명한 성경 이야기를 통해 많은 이들이 그 고난에 동참한다. ‘아바타’를 통해 우리가 볼 수 있게 된 것이 있지만, ‘보는 것’은 ‘보아야 할 것’과 다르다.
손화철 한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