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독립영화 ‘회오리바람’ 장건재 감독 “연애에 빠진 고교생, 제 얘기 담았어요”

입력 2010-02-16 18:04


홍상수 이창동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세 번째로 밴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 수상, ‘유럽의 선댄스’로 불리는 로테르담국제영화제 공식초청 등 첫 장편 영화 ‘회오리바람’으로 종횡무진 세계를 누비는 장건재 감독(33). 그를 최근 서울 여의도동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25일 개봉하는 ‘회오리바람’은 좌충우돌하는 고교생의 성장드라마를 잔잔하게 그려낸 수작으로 지난해 ‘워낭소리’에 이어 독립영화 바람을 다시 일으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청소년기에 공부보다는 연애에 관심이 많았어요. 연애가 잘 안 될 때가 가장 속상했죠. 그래서 첫 장편은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뛰어나든 아니든 간에 내 진심이 담긴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는 게 가장 중요했거든요.”

학창시절 그에겐 학교 수업을 듣는 것보다 거리를 산책하는 게 더 소중한 일과였다. 오전 10∼11시 무렵, 동네 어귀에 나와 햇빛을 받으며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들의 소곤거림, 유치원에 등교하는 아이들 같은 한가로운 풍경을 보는 게 그의 즐거움이었다. 입시가 목적인 학교는 혼자만의 사색이 필요한 그가 적응하기 힘든 공간이었다.

“학교가 사실 한 두 번 안 가는 게 어렵지, 나중엔 쉬워요.(웃음) 저는 친구들하고 어울려 말썽을 부리는 타입이라기보다는 혼자 시간을 죽이는 스타일이었죠. 시간 때울 곳을 찾다가 영화도 접하게 됐고요.”

어느 순간부터 제도권 교육과는 멀어진 그였지만, 그에겐 무언가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하릴없이 시간만 죽이던 고교생 장건재는 1994년 영화와 운명적 만남을 한다. 서울 사당동 이수역 근처에 자리했던 ‘문화학교 서울’을 통해서다. 그곳은 당시 유럽 클래식 영화 중심의 상영회와 강좌가 진행되던 시네마테크로, 영화에 대한 지적 열망이 충만한 대학생들의 집합소였다.

“단돈 2000원에 하루를 때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강점이었죠. 솔직히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영화들은 별로 없었는데, 그 공간이 주는 느낌 자체가 좋더라고요.”

그때 알게 된 형들이 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현재 독립영화계를 이끄는 사람들이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에서 영화영상학과를 졸업했고 98년 첫 단편 ‘학교 다녀왔습니다’로 감독 데뷔를 한 후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촬영을 공부했다.

‘회오리바람’은 사실 그가 그렸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온 영화라고 한다.

“제 자전적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사실 전 주인공보다 훨씬 못나고 비겁했던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면서 영화가 더 담백하고 깔끔하게 나왔죠.”

사실 그가 ‘아름다운 영화’라 자평할 수 있는 힘은 영화의 숨겨진 부분에서 우러나온다. 최저 임금도 안 되는 돈으로 6개월 이상 일해 준 배우와 스태프의 헌신이 만들어낸 영화라는 지점이다. 그는 손익분기점만 넘으면 스태프들에게 수익을 똑같이 배분할 계획이다.

그저 시간을 때울 곳이 필요한 고교생이었던 그에게 이제 영화와 삶은 동의어가 됐다. 다시 사춘기로 돌아가면 영화를 선택할 것 같지 않다지만, 그는 ‘가짜’가 아닌 ‘진짜’를 찍고 싶은 영화적 꿈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또 자신의 삶이 투영된 영화가 있음에 감사하는 사람이다.

“‘회오리바람’은 제가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거리감이 고스란히 반영된 영화예요. 어느 순간 보니 영화와 제가 꼭 닮아있더라고요. 그래서 전 제 영화가 변해가는 방향을 계속 지켜보고 싶어요. 영화의 깊이도 더해가고 싶고, 정말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