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기자의 밴쿠버 엽서] 이호석·성시백 충돌 안타깝지만 격려를
입력 2010-02-15 18:43
설날 낮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던 이호석-성시백 충돌 사건이 이곳 밴쿠버에서는 순조롭게 마무리됐습니다.
TV를 통해 지켜보셨겠지만 이호석은 지난 14일(이하 한국시간)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 마지막 코너웍에서 성시백과 부딪혀 넘어졌습니다. 성시백 은메달, 이호석 동메달이 날아가고 우리와 감정이 좋지 않은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가 어부지리 은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러자 한국에서는 ‘4년 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이미 금메달(남자 5000m계주)을 땄던 이호석이 너무 욕심을 부렸다’ ‘같은 한국 선수들끼리 세계가 지켜보는 올림픽에서 보기 민망한 장면을 남겼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하루 뒤인 15일 밴쿠버 퍼시픽 콜리세움에 훈련차 나온 이호석의 모습은 안 돼 보였습니다. 대표팀 관계자는 “이호석이 자기 홈
페이지가 온통 비판글로 채워지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날 이호석은 다른 선수들보다 일찍 링크로 나와 먼저 몸을 풀었습니다. 훈련을 마친 뒤에는 관중석에 있던 성시백 어머니 홍경희씨를 찾아가 고개숙이며 사과했습니다. 홍씨는 “호석아, 다 잊고 남은 경기 잘하면 된다”며 이호석을 안아줬습니다.
이호석은 경기 당일 성시백에게도 미안함을 전했다고 합니다. 이호석(1986년생)과 성시백(1987년생)은 나이로는 한 살 차이지만 동기입니다. 성시백이 생일이 빨라 학교에 먼저 들어가 둘은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전국 1, 2등을 번갈아 차지해 서로를 너무 잘 알니다.
쇼트트랙 대표팀 코칭스태프들 역시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평소보다 밝고 힘차게 이날 훈련을 이끌었습니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은 21일 1000m, 27일 500m와 5000m계주 결승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특히 5000m계주는 선수들간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호석에 대한 아쉬움이 있더라도 지금은 비판보다 격려가 힘이 되는 시기입니다.
남자 쇼트트랙에서 한국과 경쟁하는 미국과 캐나다 외신들은 이정수의 금메달 획득보다 한국 선수간 충돌을 더 비중있게 보도하며 한국 팀 내분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 쇼트트랙 대표팀 분위기라면 악재를 호재로 바꾸는 경기 외적 능력에서도 한국이 최강이라는 점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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