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영어 ‘열공’ 중… 영국문화원-北 합작, 김일성大 등 랭귀지 코스 개설
입력 2010-02-15 20:57
“영어를 배워 나중에 외국에서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외교관이 꿈입니다.”
한국의 영어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의 답변 같지만, 이는 북한 김일성대학 학생들이 밝힌 영어를 배우는 이유다.
북한이 개방에 대비해 외국어 학습의 무게 중심을 중국어, 러시아에서 영어로 옮기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13일 ‘북한 차세대와의 만남’이라는 제하의 평양발 르포기사를 통해 북한 대학의 영어 학습 열기를 소개했다.
BBC 기자는 영국문화원과 북한 당국이 합작 프로젝트의 하나로 김일성대학에서 실시 중인 랭귀지 코스의 첫 수업 현장을 찾았다. 북한의 전력난은 권력층의 자제들이 모인 이곳도 비켜가지 못한 듯 교실은 냉랭했다. 두터운 옷을 껴입은 영국인 강사 크리스 로렌스는 “앞으로 북한에서 각 분야 지도자가 될 이들의 영어실력에 첫날부터 놀랐다”며 인상을 전했다.
한 학생은 좋아하는 영국 작가를 묻자 다소 주저했다. 하지만 이내 “셰익스피어와 디킨스”라면서 “최근 읽은 영어 소설은 제인 에어와 햄릿”이라고 답했다.
“친애하는 수령 동지” “위대한 영도력” 등의 판에 박힌 표현은 쓰지 않아 교수진 등 기성세대와는 대조를 보였다.
인접한 평양외국어대학에서는 영어에 대한 관심을 더욱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마침 고학년생들의 토론식 수업을 참관한 BBC 기자는 “영어 표현이 상당히 세련됐고, 지적 수준도 높았으며, 참여 태도도 좋았다”고 평가했다. 기자에게 영국에서 행해지는 이라크 청문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학생도 있었다.
“영어 향상에 도움이 돼 BBC방송을 즐겨 듣는다”는 한 여학생은 “북한이 정치에서 주요 국가 반열에 올랐다. 앞으로 경제에서도 영국과 같은 대국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BBC는 자긍심과 애국심에 가득찬 이들이 “자신들의 나라가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 모르면서 조국에 큰 희망을 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언젠가 서방에 문호를 개방할 세대지만 동시에 북한 당국이 보여주지 않은 진실과 대면해야 할 첫 세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