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파송 미술교육 전공 선교사 부부 “동아시아에 믿음의 붓으로 복음 그릴 것”
입력 2010-02-15 16:45
“하나님께서 주신 미술이란 달란트를 통해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는 도구가 되겠습니다. 동아시아지역을 품고 우리 가족 모두 하나님의 ‘붓’으로 살아가길 서원합니다. 후방 동역자들의 기도를 요청합니다.”
미술교육 선교사로 이달 중 동아시아지역에 파송되는 김화백(36·華百·가명) 김하윈(35·하나님의 승리 win·가명) 부부의 기도편지에는 담대함이 묻어났다. 미술교육 선교사는 ‘미술교육’ 분야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전문인사역자다. 기독교 미술선교는 국내에서도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 이런 가운데 해외 미술선교는 개척자 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다.
“미술은 좋은 선교 도구입니다. 여기에 교육까지 합치면 해외 곳곳에서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한 선교단체를 통해 파송되는 이 부부는 동아시아 현지에서 유치원 미술교사로 활동하며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다. 또 전시회를 열거나 스티커 및 포스터 등에 작품을 싣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전할 예정이다.
부부는 모두 미술 전공자다. 김화백은 동양화를, 김하윈은 조소를 전공했다. 대학시절 한국기독학생회(IVF)를 통해 훈련 받은 김화백은 2000년 초 겨울 IVF 디자인 캠프 훈련과 IVP가 발행한 미술서적 한스 로크마커와 프란시스 쉐퍼의 ‘예술과 기독교’를 읽고 선교에 크게 도전받았다. 특히 중국선교사 허드슨 테일러의 전기를 통해 동아시아지역을 가슴에 품었다.
김하윈은 대학원 시절 선배의 권유로 신앙을 갖고, 2003년 기독미술선교협회에 가입해 김화백을 만났다. 이내 평생의 반려자와 믿음의 동역자가 됐다.
선교 서원에서부터 파송까지는 많은 갈등과 어려움이 있었으며 영적 전쟁을 치러야 했다. 2002년 졸업한 김화백은 생활고 때문에 개를 사육하고 어린이 미술지도를 하면서 선교사의 소명을 잊고 지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살아온 아내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한때는 보석공예를 배워 가계에 도움을 주려고도 했죠.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영적인 무장이 우선이었습니다. 대책은 없었지만 보석공예 배우는 일을 그만두었지요.”
하지만 그해 어머니의 소천을 통해 중국선교 서원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병상의 어머니는 항상 선교지로 나가는 것을 막는 핑곗거리였다. 이후 2004년부터 5년 동안 후배들을 데리고 단기 해외선교를 다녀왔다. 2007년 선교중국대회에서 해외선교에 대한 소망을 재확인했다. 아내 역시 선교에 대한 동일한 소망을 품게 됐다.
“모든 환경이 불만족스러워도 ‘십자가만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담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앞으로의 삶이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길 소망합니다.”
부부는 파송에 앞서 19일까지 대구 서현교회 갤러리 GNI에서 전시회를 연다. ‘십자가 10년의 동행 & 선교보고’라는 이름의 전시회에서는 평면 입체 작품 등 50여점이 전시된다(053-427-3055).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