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동재] 메이드 인 재팬의 치욕

입력 2010-02-15 17:49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뜻하지 않게 터진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특수는 역설적이게도, 패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허덕이던 일본이 기사회생하는 발판이 됐다. 일본의 고도성장 속도는 무서웠다. 1960년대 이후 일본이 만든 갖가지 제품들은 국내외에서 불티나듯 팔렸다. 일제와 쌍벽을 이뤘던 상품은 탄탄한 기술력으로 무장한 독일제 정도였다. 제대로 돈 값을 하는 우수한 품질, 꼼꼼한 마무리, 고객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하는 기업 정신,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디자인…. 온갖 찬사가 일본산 상품을 향해 쏟아졌다.

1983년 1월 10일. 부산에 거주하는 고위층 주부 17명이 일본의 한 부인회와 자매결연을 맺기 위해 후쿠오카(福岡) 등지를 다녀온 뒤 온 나라가 시끄러워졌다. 일본산 코끼리표 전기밥솥을 하나씩 꿰차고 들어오는 바람에 사회문제로 비화됐던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한국형 전기밥솥을 만들라”고 불호령을 내렸고 청와대는 ‘밥통 만들기 작전’까지 진두지휘해야 했다는 후문이다. 낯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 시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메이드 인 재팬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사례다.

일본 장인 정신의 뿌리는 17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도(江戶)시대의 경제사상가이자 세키몬 신가쿠(石門心學)의 창설자인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은 일본의 상도를 완성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어떤 직업, 어떤 일도 힘들고 고단한 것이 아니다. 인격 수양의 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고객이 있는 한 사업은 영원하다. 그러므로 눈앞에 놓인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설파했다. 그러면서 더 싼 값에 좋은 물건을 제공하기 위해 의복의 안쪽이나 가구의 밑바닥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정성껏 마무리하는 것이 진정한 상인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시다 철학의 핵심은 제업즉수행(諸業卽修行) 또는 제업즉수업(諸業卽修業)으로 요약된다.

그의 가르침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인 메이지유신에서도 철저히 지켜졌다. 유신 3걸로 꼽히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오쿠보 도시미쓰(大久保利通)가 선봉에 섰다. 타국의 장점을 받아들이되 일본식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세계 일류상품 제조국을 향해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갔다.

1980대 들어서는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나 록펠러센터 같은 기념비적인 부동산을 대거 사들이는 등 경제력을 유감없이 과시하기도 했다. 욱일승천하던 일본의 기세는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서방국가들은 “경제밖에 모르는 하등동물”이라는 손가락질을 해대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 따라잡기’에 열을 올렸다.

오랜 풍요가 초래한 나태함 때문일까. 주식회사 일본에서 연이어 울리는 경고음이 예사롭지 않다.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 워크맨으로 한때를 풍미했던 소니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소비 부진으로 인해 고급 백화점들의 폐점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여객 수송 세계 1위에 빛났던 일본항공(JAL)은 법정관리 대상에 포함됐다.

일본 자동차업계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도요타와 혼다의 리콜 사태는 메이드 인 재팬이 겪고 있는 치욕의 결정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는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듯 자사 차량의 판매 촉진을 위해 발 벗고 나선 모습이다. 소비자의 신뢰를 상실한 도요타가 반격의 동력을 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하다. 이미 일본 제조업계는 한국산 제품들의 경쟁력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지닌 좋은 점들은 모두 연구대상이다. 그네들이 신봉해 온 모노즈쿠리(物作り·장인의 혼이 담긴 최고의 상품 만들기) 정신은 향후 ‘성공 DNA’의 역할을 다할 것이 분명하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실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치밀하게 살펴볼 시점이다.

이동재 선임기자 dj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