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44)

입력 2010-02-15 14:41

사랑보다 ‘정’

한 번이라도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의 문명에 비해 우리나라의 그것들은 참으로 작고 보잘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사실이지요? 그렇게 느끼시지요? 그렇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 자금성, 황산, 장가계 등을 다녀 볼라치면 우리나라의 국보 제1호, 가장 큰 것, 가장 높은 것은 애들 말로 새 발의 피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창피하다고까지 합니다.

정말 그런가요?

과거 우리나라가 아무리 경제력이 빈곤했다고 하더라도 절대군주시대인데 마음만 먹으면 왜 자금성 같은 건물 하나 짓지 못했겠어요. 자연경관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공으로 만드는 것들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얼마든지 지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짓지 않았어요.

왜 짓지 않았을까요?

너무 크면 크기에 압도되어 정이 안 가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것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가구, 흔히 말하는 엔틱한 것들의 특징은 ‘인간스러움’입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물건도 정이 있는 것과 정이 없는 게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삶의 성정은 ‘情’입니다. 동대문, 남대문, 장롱, 가구, 고려자기 같은 것들은 모두 크기로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의 그것들은 모두 휴먼 사이즈입니다. 이것이 자금성과 경복궁의 특징입니다. 결코 열등스러운 문화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크고 높고 긴 것에 주눅들어 하는지 아십니까?

휴먼 사이즈 또는 인간적인 문화 심성과 척도는 사라지고 기능적이고 지배적이며 권위적인 상업 심성으로 대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 큰 것은 정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디나 할 것 없이 많고 큰 걸 숭배하고 도모하고 추구하고 꿈꾸고 자랑하고 부러워합니다.

세월이 춥습니다. 가까이들 모이는 게 좋습니다, 정겹게! 서로의 체온으로 함께 몸을 덥히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시대가 옵니다.

물질적인 굶주림을 없애려다가 정에 허기진 사람들을 보며 우리가 정으로 살아온 사람들임을, 일깨워야지 싶으면서도 궁리가 멀리 있고 하는 짓들이 언제나 저자거리라 피차 듣고 하려는 언어가 다름을 알기에 머뭇거려집니다.

예수가 그렇게도 원하던 것은 크거나, 높거나, 많거나가 아니라 바로 ‘情’이었는데. 정겹게들 사는 것, 정으로 사는 것, 그런 마을과 사람들을 원하셨는데!!!!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