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종업원 모두 처벌 ‘양벌규정 위헌’ 결정… “나도 억울” 재심청구 급증
입력 2010-02-12 17:00
서울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A씨는 몇 년 전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 돼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고, 영업정지 1개월의 행정처분도 당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B씨가 청소년에게 술을 팔다 적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7월 헌법재판소가 사업장이나 종업원 중 한 편이 잘못하면 양쪽을 모두 처벌하는 ‘양벌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자 A씨는 법원에 재심을 청구, 최근 무죄를 선고받았다.
양벌규정 위헌 결정 이후 관련 재심청구가 폭증하고 있다.
12일 대법원에 따르면 약식기소 사건으로 벌금형을 받은 사람들의 재심청구 건수는 지난해 8월 374건, 9월 2251건, 10월 1745건, 11월 2160건, 12월 2279건으로 폭발적 증가세를 보였다. 위헌 결정이 내려지기 전인 6월에는 3건, 7월에는 1건에 불과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단독판사가 된 후 5년 동안 거의 재심사건을 맡아본 적이 없는데 최근 한 달 사이 3건이나 처리했다”며 “다른 판사들도 대개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홈페이지에는 신호위반·속도위반 등 혐의로 약식기소 됐다가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법인 또는 개인의 무죄 공시가 수백건 올라 있다.
재심 청구 건수가 폭증한 것은 양벌규정을 담고 있던 법률이 6개에 이를 정도로 광범위했기 때문이다. 헌재 전원재판부가 양벌규정 위헌 결정을 내리자 청소년보호법, 의료법, 도로교통법, 구 건설산업기본법,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 특례법 조항이 한꺼번에 효력을 상실했다. 위헌 결정 이후 이들 법률상의 양벌 규정은 책임 유무를 따져 한쪽에만 처벌하도록 바뀌었다.
이에 따라 청소년에게 술을 팔다가 적발된 업소의 종업원이나 업무 중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약식기소 됐던 화물차 운전자 등의 재심 청구가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양벌규정이 일반인의 생활에 얼마나 밀착된 법률이었는지 알 수 있다”며 “앞으로 상당기간 재심 업무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