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그리스 지원… 경제주권 내놔라”
입력 2010-02-12 19:18
유럽연합(EU) 정상들이 그리스에 지원을 약속하는 대가로 경제 주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방안에 합의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일 보도했다.
재정적자로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그리스에 지원을 약속하는 대신 연금과 의료보험, 노동정책, 상품시장과 금융시스템 등 재정정책 전반에 대한 감독권을 EU 상임위원회가 갖기로 11일 열린 EU 긴급 정상회의에서 합의했다는 것이다. FT는 “EU 53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주권 개입”이라며 “그리스는 유로존(공통화폐 유로를 쓰는 유럽 16개국)에 머무는 대가로 경제적 주권의 상당 부분을 박탈당하게 됐다”고 전했다.
EU는 구체적 지원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유로존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경우 회원국은 단호하게 공동보조를 취할 것”이라는 짤막한 성명만 발표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독일이 그리스에 대한 지원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그리스인들을 위해 왜 독일 국민이 돈을 내야 하냐”며 경제적 지원을 주장한 프랑스 스페인과 날카롭게 대립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EU의 지원을 거부했다. 게오르그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는 “올해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4% 이내로 줄일 수 있다”며 “EU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EU의 재정 감독을 받을 경우 사회 갈등이 더 증폭되고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리스는 15일 열릴 EU 재무장관회의에서 재정적자를 줄이고 공무원 파업 등 사회 갈등을 수습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유로존에 가입하는 국가는 재정적자를 연간 GDP의 3%, 누적 60% 내로 유지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 그리스는 그러나 유로존 가입 이후 낮은 금리를 이용해 빚을 마구 끌어와 재정적자를 메웠다. 그리스의 정부 부채는 지난해 GDP의 13% 가까이 됐으며, 누적적자는 100%를 훌쩍 넘어 계속 늘고 있다.
그리스뿐만이 아니다. 아일랜드의 지난해 재정적자는 그리스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탈리아도 누적적자가 GDP의 100%를 넘었다. 포르투갈의 누적적자는 올해 8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소수 정권인 호세 소크라테스 총리는 정치적인 힘이 없는 상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스페인이 가장 큰 구멍”이라며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그리스보다 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독일 슈피겔은 “16개 유로존 국가 중 5개 나라가 사실상 재정관리를 포기할 경우 독일 핀란드 네덜란드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서 “재정관리에 실패한 국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