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라운지] 중국의 밸런타인데이
입력 2010-02-12 16:44
중국에서도 밸런타인데이는 연인들에게 최고의 날이다. 이날은 칭런제(情人節·연인들의 날)라 불린다.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 구분 없이 연인들은 이날 초콜릿이나 사탕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확인한다.
그런데 올해 칭런제는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설)와 겹쳐 연인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중국에서 춘제 때는 전통적으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따라서 연인들은 14일 가족과 함께 보낼 것인지, 아니면 애인과 함께 보낼 것인지 고민이다.
베이징에서 직장을 다니는 리수(李書·24)씨는 이런 고민을 하다 최근 병까지 걸렸다. 그는 오래전부터 올해 칭런제 때 3년간 사귄 여자친구 집에 찾아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결혼 승낙도 받기로 약속했다. 2월이 되자 시안(西安)에 있는 여자친구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거의 매일 전화했다. 그러나 올해 칭런제가 춘제와 겹친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고민에 빠졌다. 지난해엔 형이 춘제 때 고향에 오지 않아 80세 할머니가 형과 1년 동안 말도 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리수는 고민 끝에 여자친구에게 전화해 “올해는 춘제와 겹쳤으니 시간을 미루자”고 제안했다. 이에 여자친구는 “알아서 해”라며 언짢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리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가슴앓이를 하다 급기야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까지 곤란해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조바심증에 걸렸다”며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라고 조언했다.
그가 이 같은 자신의 사연을 인터넷에 올리자 수많은 누리꾼이 댓글을 달았고, 가장 인기 있는 글이 됐다. 그만큼 공감하는 연인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가족과 친척을 선택할 것인지, 애인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최근 한 설문조사가 있었다. 응답자 1만9160명 중 31.3%는 후자를 선택했다. 여전히 다수가 전자를 택했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중국 사회에서 이는 적지 않은 비중이다. 한 누리꾼은 “춘제 연휴는 길지만 칭런제는 하루인 만큼 애인과 함께 지낸 뒤 고향에 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올해 청런제는 춘제와 겹쳐 우리 젊은이들에겐 최악이다”면서 “부모에게 ‘결례’를 할 수도, 애인에게 ‘실망’을 줄 수도 없어 정말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오종석 특파원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