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수 엄마와 꽃미남 아들 ‘고시텔 잠입기’… 이명랑 신작 ‘여기는 은하스위트’
입력 2010-02-12 16:13
인터넷서점 인터파크 도서 웹진 연재 당시 누적 조회수 140만, 일일 최대 5만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던 소설가 이명랑(37·사진)의 장편 ‘여기는 은하스위트’(자음과모음)가 출간됐다.
서울 영등포에서 나고 자란 ‘영등포 작가’ 이명랑은 그간 영등포를 무대로 영등포 사람들의 질펀한 삶을 꾸밈없이 그려왔다. 명랑이라는 이름만큼 명랑한 문체에 담긴 것은 경쾌하고 쿨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연 많은 서민들의 고된 삶이었다.
이번 소설 역시 그렇다. 배경은 강남으로 옮겨왔지만, 소설은 오롯이 엉덩이 내려놓을 곳 하나 없이 거리를 헤매는 인간 군상의 애처로운 모습을 담았다.
초특급 미모의 소유자이나 이기적이고 낭비벽이 심한 엄마 오미자와 철없는 부모덕에 일찍 철이 들어버린 꽃미남 아들 황제. 두 모자는 아빠가 사고를 친 후 빚쟁이에 쫓기게 되자, 엄마 친구의 소개로 강남의 한 여성 전용 고시텔 관리를 맡는다. 여성전용인 탓에 황제는 여장을 한 채 ‘황진이’로 행세하며 고시텔 여자들의 뒤치다꺼리를 한다. 그 곳에는 생김새도, 성격도, 직업도 각기 다른 26명의 여자가 살고 있다. 애 셋 딸린 아줌마처럼 보이는 자칭 노처녀, 못생긴 데다 입까지 험한 호박욕쟁이, 거실 컴퓨터를 두고 매일 싸우는 쇼핑녀와 주식녀, 화장실 휴지 도둑으로 의심되는 1호실 할머니, 여기에 황제가 첫눈에 반한 완벽녀까지.
작가는 황제의 눈을 통해 풍비박산이 난 가족과 오갈 데 없는 고시텔 장기계약자들의 모습을 특유의 솔직 담백한 문체로 그린다.
처음엔 밥솥에 남아있는 밥 한 덩어리를 놓고 싸우던 여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마음을 열어간다. 빚쟁이에게 쫓기는 모자, 딸에게 미움을 받아 손주를 보지 못하는 1호실 할머니 등 각자의 숨겨진 속사정이 하나 둘 드러나는 과정에서 이들은 서로를 보호하고 상처를 위로하는 사이가 된다. 파편화된 공간인 고시텔에서 가장 밑바닥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모여 끈끈한 연대를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작가는 “‘자꾸 떠밀려 다니기만 하는 이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어디서든, 아주 잠시 라도 엉덩이를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그런 방 한 칸 마련해주는 일이 아닐까’라는 마음으로 ‘여기는 은하스위트’의 빈 방을 채웠다”고 말했다.
쉽게 읽히는 문체와 약자의 연대라는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의 전작들에 비해 다소 실망스럽다. 시장 사람들의 애환을 생생한 언어로 담아내며 고도의 리얼리즘을 구현하던 전작들과 달리 다소 현실성 없는 캐릭터와 억지스러운 설정은 공감지수를 반감시킨다.
양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