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도종환 사무총장 “굴욕적인 확인서 요구… 저항 글쓰기 운동 펼칠 것”
입력 2010-02-12 16:13
문화예술위 ‘시위불참 확인서’ 제출 요구 거부
“선비는 목이 잘리더라도 무릎을 꿇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설사 문예진흥기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뜻을 굽히면서 잘못된 정책을 따라갈 순 없어요.”
11일 서울 용강동 한국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만난 도종환(56) 사무총장은 문예진흥기금과 관련해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 화가 단단히 난 듯 보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가 기금 지원 조건으로 ‘시위 불참 확인서’ 제출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낸 것은 작가들을 모독하는 반문화적인 행태라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예술위는 지난달 “실제 불법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으며, 향후 불법폭력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기금 관리 규정에 따라 보조금을 반환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작가회의에 보낸 바 있다. 공문에는 “유감스럽게도 우리 위원회는 귀 단체가 2008년도 불법폭력시위단체인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소속돼 있음을 경찰청으로부터 확인한 바 있습니다”라는 문구도 들어있었다.
도 총장은 “작가회의는 고은 황석영 조정래 박완서 정호승 성석제 신경숙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모두 소속돼있는 단체”라며 “이런 작가들이 속한 단체를 불법폭력시위 단체로 규정하고, 향후 행동까지 통제하려는 발상이 말이 되느냐”며 개탄했다. 또 “만약 우리가 폭력을 휘둘렀다면 형사처벌을 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면서 “재정지원을 무기로 문화예술인을 좌지우지하고 단체의 근간을 흔들려는 의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작가회의는 계간지 발간 및 세계 작가 초대행사 비용 등 총 34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확인서 제출을 거부함에 따라 사업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통권 57권을 내온 ‘내일을 여는 작가’는 정간될 위기이며 가라타니 고진, 위화 등 세계 유명 작가를 초청해 교류해오던 ‘세계작가와의 대화’도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작가회의 내부에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2300여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그냥 각서 한 장 써 주고 돈 받자”고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사업을 못하더라도 굴욕적인 확인서를 써주는 건 작가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확인서 제출에 반대했다.
“계간지 올 봄호 원고까지 다 모아져있지만, 지원금이 없으면 책을 발간할 수 없습니다. 또 올해는 남미 작가들을 초대할 계획이었지만 그 역시 힘들겠죠. 15년 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작가와 교류해왔는데, 한국의 후진적 문화정책이 세계에 다 알려질 겁니다.”
답답한 문제는 현실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다.
“각서를 쓰면 돈을 주고, 아니면 안 주겠다는 건데, 대응할 방법이 없어요. 작가들끼리 예술위 앞에 모여 글을 낭독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든가, 재정탄압이 사라질 때까지 비판적인 글을 쓰는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저항해 보는 수밖에요.”
작가회의 측은 오는 20일 총회 때 회원들의 서명을 받아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도 총장은 ‘접시꽃 당신’ 등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로 이름 높은 시인이지만 예술위를 비판할 때는 격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예술위는 예술 진흥 사업을 지원할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지 예술단체 검열과 통제를 위해 생긴 단체가 아니에요. 김병익 전 예술위원장도 작가회의 소속입니다. 예술을 위해 수십 년간 함께 일해 온 동지들한테 이게 무슨 행태입니까.”
도 총장은 “정부도 이제 원칙과 정도를 지켜야 할 때”라며 정부에 대한 충고와 비판도 잊지 않았다. “예술위 ‘한 지붕 두 위원장’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 입맛에 안 맞으면 쫓아내고, 재정 탄압하고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있어요. 예술인은 자존심과 긍지로 사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길들이기를 하다니요. 국민은 영원하지만 권력은 짧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