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꺾인 일본기업들 “한국 배우자”

입력 2010-02-11 17:44


도요타·닛산, 현대차 신차 나오면 정밀 분석

도요타자동차와 닛산자동차는 현대자동차가 신제품을 만들면 전담팀이 이를 바로 입수해 분해한 뒤 품질과 원가, 디자인, 편의성 등을 정밀 분석한다. 과거 현대차를 변방의 싸구려 차 회사로 내려다보던 일본 업체들이 현대차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올려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도요타의 한 간부는 “지금 한국차를 얕잡아보는 일본 회사는 없다”고 말했다.



일본 기업의 ‘한국 기업 배우기’는 자동차뿐 아니라 전기전자, 철강 등에서도 활발하다. 한정현 코트라 일본사업단장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부상하면서 일본 업계가 위협 차원을 넘어 절박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브랜드 대량 리콜, 일본항공(JAL) 파산 등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는 일본 산업계 분위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글로벌 전자업계에선 일본 대기업 임원이 “이젠 삼성전자의 뒷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삼성에 뒤처졌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도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 가전전시회 CES에서 “기초기술과 디자인에서 우리가 앞섰다. 일본 업체가 신경은 쓰이지만 겁은 안 난다”고 말했다.

LCD TV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뒤진 소니는 전담팀을 만들어 삼성과 LG의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오네다 노부유키 소니 부사장은 지난해 10월 중간결산을 발표하면서 “소니가 삼성전자에 패한 기본적인 이유는 상품력”이라고 뼈아프게 반성한 바 있다.

파나소닉도 마찬가지다. 오쓰보 후미오 파나소닉 사장은 “기존 상품으로 한국 기업과 경쟁하는 것은 무리”라며 “우리가 강한 친환경기술 등을 앞세워 시장 판도를 바꾸는 싸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최대 철강업체인 신일본제철은 포스코와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 두 회사는 서로의 주식을 보유하면서 투자, 기술개발, 원자재 구매 등에서 긴밀히 협력하는 사이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는 최근 ‘한국 4강 약진의 비밀’이라는 특집기사에서 “위기감이 커진 일본 기업들이 한국 4왕(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포스코)의 제품 품질과 디자인, 마케팅 등을 필사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배우기는 4왕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일본 통상성 산하 석유화학단지협회 ‘링(RING)’ 관계자 10여명이 충남 대산의 석유화학공업단지를 찾았다. 단지 입주사인 현대오일뱅크와 삼성토탈, 호남석유화학, LG화학의 제휴사업 고수익 비결을 배워가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말엔 서일본고속도로가 하이패스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려고 한국도로공사에 자사 직원들을 보냈다. 히데노리 아베 서일본고속도로 해외사업처 부부장은 “고속도로 통행료 무인요금 징수시스템(ETC)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것이지만 현재 요금정산과 고객 서비스는 일본을 능가한다”고 감탄했다.

하지만 일본의 ‘엄살’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이 한국을 치켜세우는 이면에는 한국의 방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도 숨어 있다”면서 “우리가 자만에 빠지는 순간 상황은 역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천지우 박재찬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