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원점수 공개 판결] ‘서열화’ 논란 속 고교간 경쟁 가속화 전망
입력 2010-02-11 22:29
대법원이 11일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점수를 공개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림에 따라 고교간 경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수능 정보는 공개 정도와 활용도에 따라 고교등급제와 고교선택제, 교원평가제 등에 모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교육정책의 근간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그동안 성적 정보가 공개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 클 것이란 이유에서 철저히 비공개 원칙을 지켜왔다. 30년 넘게 지속된 평준화 정책도 학교별 격차를 인정하거나 조장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토대로 하고 있었다. 수능 원자료가 공개되면 평준화 정책은 사실상 와해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교과부는 원고측인 학교를 사랑하는 모임(학사모)에 수능 원점수의 지역별 정보는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교과부는 “수능 원점수의 학교별·지역별 정보는 이번 판결 공개 대상 정보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판결과 별도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제기한 수능 원점수 공개 소송도 곧 “공개하라”는 판결이 날 것으로 예측돼 지역별·학교별 학력 수준과 차이가 드러나고 서열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조 의원의 소송은 학생 개개인의 원점수까지 포함된 것이어서 법원 판결에 따라 수능 점수가 모두 공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교원단체 등은 적지 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수능 원점수 공개는 지역별·학교별 서열화를 부추겨 결국 공교육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수능 점수 공개로 지역별 학력 격차를 실제로 파악할 수 있고, 학교별 경쟁 원리가 도입돼 학생들의 학력 향상에 일조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수능 정보 공개를 꺼리는 것은 평준화의 폐단을 감추기 위한 것일 뿐이란 비판도 있다. 엄존하는 지역별·학교별 격차를 드러내서 문제를 보완하려면 정보 공개가 필연적이라는 논리다. 고교선택제가 시행되는 마당에 학교 선택을 돕는 정보로서의 가치가 크다는 주장도 있다.
교과부는 이런 주장을 조금씩 받아들여 지역별 차이를 드러내는 정보를 제한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실제 교과부는 지난해 4월 2005∼2009학년도 수능 성적을 처음으로 분석해 시·도별, 영역별로 발표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조 의원이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전국 고교의 2008학년도 수능성적 원자료를 열람한 뒤 이를 분석해 언어·수리·외국어 등 3개 영역의 1등급 학생 비율 및 평균 점수의 학교별 순위를 공개하기도 했다. 교과부는 이번 판결로 수험생 이름과 수험번호 등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이번 공개로 학교·지역 간 서열화 논란이 촉발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교과부 관계자는 “지역별 학력 격차가 드러난다면 학력이 낮은 지역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는 등 뒤처지는 학생들의 학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