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주은] 마르타와 마리아

입력 2010-02-11 17:36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그리스도가 한 자매의 집을 방문한다. 그리스도는 최고로 귀한 손님이므로 언니인 마르타는 극진히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부엌에 들어가 분주하게 일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거실에서 그리스도의 발치에 앉아 그가 하시는 말씀에 폭 빠져들어 부엌에는 들어올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걸 보고 화가 난 마르타는 마리아에게 거기 있지 말고 어서 와서 좀 도우라고 말한다.

그 때 그리스도는 “마르타야, 너는 참으로 많은 일을 염려하지만, 정작 필요한 한 가지는 모르는구나.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고, 그 몫을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며 은근히 동생의 편을 들어주었다.

손님이 집에 오셨는데 거실에 혼자 모셔두고, 자매 모두 부엌에만 들어가 있는 상황보다는 일을 분담하여 한 사람이 식사준비를 하고, 나머지 한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 같아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분담한 일이 동급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부엌일은 대화보다 훨씬 하찮게 느껴지고, 소외되어 있으며, 육체적으로 고되기 때문이다.

집안일을 돕지 않는 동생이 득을 보고 부지런한 언니가 칭찬은커녕 핀잔을 듣는 이 이야기는 참으로 부당하게 들린다. 특히 가족행사를 둘러싸고 부엌일과 관련해 신경이 예민해지기 쉬운 명절 때라면 더욱 그렇게 들릴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액면 그대로 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예로부터 갖가지 신학적인 해석이 따라붙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각각 일과 신앙 혹은 세속적인 가치와 정신적인 가치를 상징하는데, 세속의 일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가치는 그보다 중요한 것이니 일 때문에 정신적인 수련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의미가 가장 일반적인 해석이다.

누구나 각자에게 맡겨진 소명이 있고, 그 소명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해석은 삶의 조건이 아무리 불만족스러워도 그것을 받아들이자는 것 같아 조금 맥없이 들리기는 한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일을 ‘나답게’ 잘 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적어도 자신을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불행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마르타가 불행하다면 그 이유는 마리아를 부러워하고, 상대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비하했으며, 또 그 때문에 스스로 분노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동생이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최고로 훌륭한 음식을 만드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고, 존경하는 분께 그 음식을 대접한다는 사실에 기쁨을 만끽하며 더불어 그 결과로 그리스도에게 인정을 받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명절이 되면, 어쩔 수 없이 가족 중 누군가는 열심히 일하고도 별로 좋은 소리 못 듣는 마르타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전국의 마르타들에게 현명한 대안을 제시해보려고 시작한 글이었는데, 원론적인 충언으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이왕이면 어렵게 모인 가족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마리아뿐 아니라 마르타까지도.

이주은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