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희망 1번지 ‘가나안교회·쉼터’
입력 2010-02-11 17:41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9일 오후. 청량리역을 나서 백화점 옆길로 접어드니 바로 홍등가다. 유리문 너머의 ‘영업’ 준비 풍경들을 지나쳐 가니 그리 반듯하지 않은 건물 하나가 나온다. 노숙인 230명이 생활하고 있는 가나안교회(김도진 목사)와 쉼터. ‘청량리 588’ 한가운데 왜 노숙인 시설이 자리하게 됐을까? 위화감을 느끼며 들어선 그곳에는 의외로 간단명료한 ‘진리’가 있었다.
“사람의 계획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계획뿐입니다!”
노숙인 선교가 중심인 교회들은 여럿 있지만 가나안교회(www.canaanhomeless.or.kr)에는 분명한 특징이 있다. 첫째로 노숙인을 찾아가 식사나 의복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찾아와 입소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입소하면 무료숙식뿐 아니라 이·미용 지원, 의료 서비스, 파산 면책, 말소된 주민등록 회생 등을 집중적으로 도와주고 공공근로 등 일자리를 알선한다. 입소자가 자활해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시설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가장 분명한 세 번째 특징은 입소자들이 매일 새벽과 저녁 두 차례 예배를 드리는 등 ‘영혼 구원’을 최우선 목적으로 내세운다는 것이다. 이 예배에는 이곳 교역자뿐 아니라 연간 200여명의 외부 강사와 목사들이 자비량으로 와서 열정적으로 설교한다. 혹자는 ‘교회인데 당연한 것 아니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처럼 국고의 보조를 받는 사회복지시설은 교회에서 설립했어도 선교는 간접적으로만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분명 독특하다.
부교역자 김정재 목사는 “쉼터가 자리 잡은 과정이 남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처음부터 노숙인 선교를 하겠다는 목적 아래 세워진 게 아니라는 것. 설립자 김도진 목사는 1986년부터 이 자리에서 교회를 해오던 중 96년 갑자기 교육관 방에 보일러를 놓고는 청량리 노숙인 20여명을 모아 돌보기 시작했다. 순전히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이유였다.
IMF 이후 돌보는 노숙인이 급증했다. 이로 인해 교회가 어수선해지자 당시 200명이던 성도들이 차츰 떠났다. “애들 교육상 안 좋아서” 등 이유도 다양했다. 그렇게 성도는 10분의 1로 줄었고 그 자리를 200여 노숙인이 채웠다.
이들을 끌어안고 무작정 밥을 먹이고 돌보다가 차츰 시설을 갖추게 되고 서울시 등 정부기관과 협력하게 됐다. 지금은 시에서 파견된 영양사와 간호사도 상근한다. 이렇게 ‘무계획’적으로 일해온 탓에 아직도 소유 건물 하나 없이 월세 450만원을 내는 데다 그나마 이 건물도 지역 재개발계획으로 철거 위기다. 그러나 교역자들은 ‘하나님 계획대로’ 해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 덕분으로 국고 보조를 받으면서도 본래 목적대로 선교를 최우선으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취재 중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오후 5시30분 저녁식사 시간이다. 건물 지하와 2층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 3층 식당 앞에 길게 줄을 섰다. 곁을 지나는 기자에게 인사를 건네는 표정들이 해맑다.
그런데 들어보니 이 중 중범죄를 저질렀던 전과자들이 태반이다. 김정재 목사는 “나아진 듯하더니 술에 취해 나가고, 얼마 있다가 또 찾아오는 일이 계속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완전히 떠난 사람을 제외하고는 결국은 다 변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유는 하나, “말씀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람이 노숙을 하는 이유는 경제 불황 때문도, 사회제도 때문도 아니고 ‘마음의 상처’ 때문이며 이는 예수님의 복음으로만 치유할 수 있다는 김도진 목사의 신념 아래 사역을 펼친 게 유일한 비결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돼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십일조와 감사헌금으로 교회 운영에 기여하는 입소자들도 100여명이나 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바로 이들과 같이 지극히 낮은 자를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누구나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간단명료한 진리였다(02-964-1558).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