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작가, 어린 시절 기억·감성 되새김질… ‘염소 똥은 똥그랗다’
입력 2010-02-11 17:34
염소 똥은 똥그랗다/문인수 시·수봉이 그림/문학동네
“나무는 봄이 오면 침 맞는다/뾰족뾰족한 금빛 햇살로 침 맞는다/언 가지 뼈마디마다 침 맞는다//꽃샘바람에도 오싹오싹 움트는 새싹들,/나무는 봄에 따끔따금하겠다(‘나무는 봄에 따끔따금하겠다’ 전문)
나무에 돋는 새싹을 침으로 표현한 발상이 신선하다. 이런 게 아이들의 마음일까.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문인수(65) 시인이 첫 동시집 ‘염소 똥은 똥그랗다’(문학동네)를 펴냈다. 마흔의 나이에 등단해 일곱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은 어린 시절 기억과 감성들을 되새김질하고 갈무리해 아름다운 동시로 빚어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시편들에는 어린이들의 맑고 순수한 마음, 세상과 주변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배어있다.
“공은 동그랗게/앉아 있다 아니,/서있다//아무리 들여다봐도/앉으나 서나/키가 똑같다//앉아! 일어서!/앉아! 일어서!/아무리 건드려도/동글동글 웃는다//공은 굴러가다/제자리에 딱,/멈춰 선다 아니,/앉는다”(‘공’ 전문)
동그란 공을 보고 키가 앉으나서나 똑같다는 표현을 끄집어낸 것은 기발하다. 아이들의 개구장이 짓도 시 안으로 들어와 있다. “새로 시멘트 바른 바닥을 밟았다/물컹, 발자국 하나가 찍혔다//수돗가 바닥에 커다란 입이 생겼다/깜짝, 놀란 채 다물지 못하고 있다”(‘앗, 나의 실수’ 전문)
표제작에서는 동그란 밥상 안에서만 맴도는 염소의 모습을 온통 ‘동글동글’하게 그린다. “염소가 맴맴 풀밭을 돈다//말뚝에 대고 그려 내는 똥그란 밥상,/풀 뜯다 말고 또 먼 산 보는 똥그란 눈,/똥그랗게 지는 해,//오늘 하루도 맴맴 먹고 똥글똥글,/똥글똥글 염소 똥”
아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재미있게 표현한 시도 있다. “아빠는 또 밤 아홉 시 뉴스를 보던 채로 드러드렁 코를 곱니다/“발전소 발전기 돌아간다”/엄마가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하루하루 피곤할 정도로 열심히 일해서 월급 받아 오는 아빠 덕분에 하긴, 우리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요/밥솥, 텔레비전, 컴퓨터도 켭니다”(‘전기세 내는 발전소’ 전문)
“동시랑 계속 더 놀고 싶다. 정이 많이 들었다”라고 말하는 시인의 동시 50여편에는 아이들에게 주변의 사물들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