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의 세계화 앞장서는 이영희씨 “샤넬처럼 만드는게 꿈”

입력 2010-02-11 14:55


“돈 안 되는 뉴욕 한복 박물관을 계속 운영하는 건 자존심 때문입니다. 전 세계 패션 시장의 중심에서 물러서면 제가 해온 노력이 헛것이 될 것 같아요. ‘네가 재벌이냐’면서 다들 미쳤다고 하는데 저는 포기가 안 됩니다.”

20대 청춘의 각오처럼 들렸다. 올해로 일흔 넷 한복의 거장 이영희씨의 얘기다.

이씨는 파리컬렉션에 1993년 한복을 들고 나갔다. ‘우리 고유의 선과 색을 알리자’는 목표에서였다. 해외 언론과 예술가 사이에서 예상 외 찬사가 쏟아졌다. 이씨는 “세계인이 즐겨 입도록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이후 파리에서 24차례를 포함해 현재까지 400여 번의 해외 패션쇼를 열었다.

이씨로 인해 한복은 세계로 뻗어나갔다. 저고리를 생략하고 치마를 서양 드레스처럼 개조하는 등 한복의 변형에 세계는 열광했다. 유명 해외 디자이너도 우리 옷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에 표출하고 있다.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자연사박물관은 이씨의 한복을 100년 동안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할일이 더 많다고 했다. 1994년 파리에 매장을 열었지만 적자로 문을 닫았다. 뉴욕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해 매장을 철수했다. 2004년 개장한 뉴욕 맨해튼의 ‘이영희 뮤지엄’만이 상징적으로 남아있다. 한복과 전통 공예품을 전시하는 30평 남짓의 공간을 운영하는데 한달에 2만 달러가 필요하다.

1980∼90년대 한복을 팔아 꽤 큰 돈을 만졌다는 이씨는 “외국에 가서 한복을 알리는 데 모아 둔 돈을 다 썼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3월 일본 도쿄에서 단독 한복 패션쇼를 갖는다. 한때 한복이 기모노의 또 다른 형태라고 평가절하 되던 시절도 있었다. 이번 쇼에서는 기모노 10벌이 먼저 등장하고 50∼60벌의 한복이 이어 나오는 형식으로 꾸며진다. 이씨는 “기모노가 우리 옷으로부터 영향 받았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리려는 의도”라고 귀띔했다.

이밖에도 올해만 프랑스, 터키 등지에서 7개의 패션쇼가 잡혀있다. 이씨는 전통 섬유 모시를 활용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실크와 혼방하고 홍두깨로 천을 두들기는 등 모시의 빳빳함이 익숙지 않은 세계인을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이씨는 “돈을 벌려고 마음먹었다면 한복 세계화는 진작 포기했어야 했다”며 “후배들에게 한복을 가지고도 샤넬과 같은 명품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신은정 기자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