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부녀의 한복 나들이 “세계인도 감탄… 한복 한류 불어야죠”
입력 2010-02-11 15:01
품이 낭낭해서 좋다./바지저고리에 두루막을 걸치면/그 푸근한 입성./옷 안에 내가 푹 싸이는/그 안도감(安堵感)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시인 박목월은 “햇솜을 푸짐하게 놓은 한복은 입성이 아니라 숨결이 베틀질한 씀씀한 생활(生活)” 이라고 노래했다. 일상에선 양복에게 자리를 내어 준 지 오래 됐지만, 설날 어른들께 세배 드릴 때는 우리 옷을 갖춰 입어야 제격이다. 태어나서 처음 입은 배냇저고리를 닮은 옷, 어머니 가슴처럼 우리를 푸근하게 품어주는 한복. 둥그스름한 배래, 단아한 도련, 살짝 들려올려진 섶…한복의 아름다움은 세계인들이 감탄한다. 그 아름다운 선 속에 인간에 대한 배려, 과학이 숨어 있다. 설을 맞아 우리 옷 한복을 대특집으로 만나본다.
“경인년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가정에 행복이 깃드시기를 바랍니다.”
한복을 차려 입은 관광공사 이 참 사장은 설을 앞두고 서울 필동 한국의 집에서 국민일보 독자들에게 큰절과 함께 새해 인사를 했다. 이 사장은 “올해는 60년 만에 맞이하는 백호랑이해 인만큼 국운상승의 한해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새해 인사를 마친 이 사장은 옆에 선 딸 미카(22·이화여대 국제학부 국제학과 2)양을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너무 예뻐요. 한복은 특히 여성들의 옷이 아름답습니다. 목선과 얼굴을 돋보이게 해주는 디자인입니다.”
미카양도 아버지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도 너무 멋지세요. 요즘 옷들은 노출이 심해 조심스러운데 한복은 몸을 감싸 줘 마음도 몸도 정말 편해요.”
미카양은 전에 한복을 여러 번 입었지만 배시댕기는 처음 해본다며 배시시 웃는다. 배시댕기는 결혼 전 아가씨들이 머리에 하던 장식이다.
미카양이 처음 입은 옷은 녹색저고리에 붉은 치마. 시집갈 때 입는 옷이라고 설명하자 이 사장은 “아직 시집은 멀었다”면서 “시집보낼 생각을 하면 벌써 가슴이 아프다”며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이 사장은 팥색 바지에 겨자색 저고리, 자주색 마고자를 입었다.
다음에는 색동저고리로 갈아입었다. 색동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은 미카양을 보며 이 사장은 “공주님 같다”고 했다. 미카양은 “색깔이 환상적”이라면서 “아버지 저고리 색동의 색은 정말 멋스럽다”고 했다. 이 사장은 “원색보다 약간 어두운 느낌의 이 색이 바로 한국의 색들”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쑥색 양단 두루마기를 입은 이 사장은 색상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했다. 두루마기까지 갖춰 입자 미카양은 더욱 어른스러워졌다. 핑크색 두루마기에 방한용 모자인 남바위까지 쓰자 이 사장은 ‘우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카양도 난생 처음 써보는 남바위가 신기한 듯 만지작거렸다. 명주솜을 넣어 만든 목도리를 한 부녀는 “한복이 이렇게 따뜻한 줄 몰랐다”면서 “보온성도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지난여름 한지로 만든 한복을 선물 받아 잘 입었다는 이 사장은 “바지 입기가 조금 불편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고전 한복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행사 축제 등을 위한 특별한 옷이 되기 쉽다”면서 “불편함을 덜어내고 특징적인 요소를 살려 디자인 하면 한복도 한류의 바람을 타고 세계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류 얘기가 나오자 자연스레 관광의 해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올해부터 2012년까지 3년간을 한국방문의해로 정했습니다. 공사는 한국관광 홍보를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관광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이 사장은 이 기간 동안 열심히 노력해 외래관광객 1000만명과 관광수입 130억 달러를 달성해 관광수지 적자 해소를 해소하고, 우리나라의 관광산업경쟁력을 세계 20위권에 올려놓겠다고 다짐했다. 기와집 처마 밑에서 이 사장의 사업계획을 귀담아 듣는 미카양의 조신한 모습이 마치 조선시대 양반집 규수 같다.
이날 이 사장 부녀의 한복을 만들어 준 이는 이인영한복연구소 대표 이인영씨. 이씨는 “설날에는 색동저고리를 즐겨 입었다”며 “색동은 바느질하고 남은 여러 색의 비단 조각을 모아 두었다가 아기 돌에 색을 맞추어 이어붙여 입혔던 것으로 우리 아낙네들의 알뜰함이 담겨 있는 옷”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장과 미카양이 입은 옷은 모본단에 쪽 치자 양파 등으로 천연염색을 해서 손바느질로 한 줄 한 줄 이어 붙였다. 양장으로 치면 오트 쿠티르(고급맞춤복)인 셈이다. 나머지 한복들도 모두 천연염색을 한 원단을 썼으며, 소재는 미카양이 입은 녹의홍상(綠衣紅裳 )만 양단이고 모두 모본단이다.
이씨는 “예전에는 얇은 께끼한복을 지어 사철 입었지만 요즘은 제철에 맞는 소재를 쓴다”면서 겨울에는 모본단 양단 등 도톰한 원단이 제격이라고 말했다.
미카양이 입은 저고리는 지금껏 보와 왔던 것과는 조금 달라 눈길을 끈다. 특히 고름이 눈에 설다. 이씨는 “고름은 어린아이들 저고리에 있던 허리끈을 차용했다”며 “스타일이 좀더 젊어 보이고 입기도 편하다”고 소개했다. 저고리는 동정과 깃 넓이가 예전보다 조금 넓어졌고, 특히 깃에 싱을 넣어 반듯이 세워 멋을 냈다. 도련도 예전보다 길어지고, 배래는 둥글게 늘어지는 붕어배래와 일직선에 가까운 칼배래 중간으로 살짝 좁아진 편이다. 소맷부리에는 다른 색 천을 덧대거나 꽃무늬 등을 수놓아 멋을 냈다. 저고리 고름이 짧은 대신 치마고름을 길게 늘어뜨렸다. 치마는 더욱 풍성해졌다. 허리를 넓게 해 폭 그대로 주름을 잡아 입으면 항아리모양이 된다. 양장에서 레이어드룩이 유행하는 것처럼 저고리 밑으로 하얀 치마말기가 살짝 나오도록 하고, 치마 아랫단에도 다른 색을 덧댔다. 두루마기는 소맷부리와 고름, 단 등에 다른 천을 덧대 악센트를 주었다.
한복의 색상은 화려한 편이지만, 모두 자연과 가까운 색이다. 쪽색 쑥색 치자색 팥색 등 이름만 들어도 우리 일상생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색들임을 알 수 있다.
이씨는 “겨울한복에는 남바위나 조바위 등 방한용 모자, 팔목을 감싸는 토시, 목도리 등을 곁들이면 한결 멋스런 차림이 된다”고 일러준다. 한복을 입을 때 남성들은 구두를 신어도 크게 흉하지 않지만 여성들은 당혜 꽃고무신 등을 신는 것이 보기 좋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