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방화 2년… 서울시 문화재 보호 두 얼굴

입력 2010-02-10 18:50


보물급 챙기고 나머지는 시늉만

숭례문이 방화로 무너진 지 2년이 흘렀다. 정부는 그동안 문화재 안전관리 예산을 대폭 늘렸다. 하지만 일부 유명한 문화재에 예산이 집중돼 있을 뿐 실시간 감시 시스템은 여전히 허술했다.

9일 낮 12시쯤 찾아간 서울 종로6가 흥인지문은 CCTV 11대에 둘러싸여 있었다. 갑자기 관리사무소에서 뛰어나온 직원 김모(62)씨는 “신설동 방향 도로 옆에 설치된 감지기에서 신호음이 울렸다”며 “숭례문 화재가 떠올라 한시도 마음을 놓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나가던 한 시민이 호기심에 경계선 안으로 잠시 들어갔던 것을 확인한 뒤에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2008년 2월 11일 숭례문이 잿더미로 무너져 내린 뒤 서울시는 ‘2009년 문화재 안전관리 예산’을 전년보다 18억원 많은 61억원으로 늘렸다. 흥인지문에는 예산 6000여만원을 투입해 불꽃감지기 5대, 침입감지기 등을 지난해 2월 설치했다. 흥인지문 2, 3층에는 18개의 청정소화기가 비치됐고 관리사무소 직원 9명이 한 시간마다 순찰한다.

반면 홍지동에 있는 서울시유형문화재 33호 홍지문은 통행로에 CCTV 2대가 세워져 있었지만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다. 우선 주변에 관리사무소가 없었다. 대신 1.6㎞쯤 떨어진 창의문 관리사무소에서 홍지문 CCTV 화면을 감시하고 있었다. 홍지문은 1715년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잇기 위해 세워진 성곽인 탕춘대성(蕩春臺城)의 출입문으로 1921년 홍수로 허물어졌으나 77년 복원됐다.

홍지문을 실시간 모니터하고 있다는 종로구 측 설명과 달리 10일 홍지문 정면에서 1m쯤 앞에 있는 벤치에는 먹다 남은 닭고기가 이틀 동안 방치돼 악취를 풍겼다. 그 옆에는 과자 봉지와 먹다 남은 음료 병도 있었다. 홍지문으로 들어가는 길가에도 쓰레기더미와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었다. 출입문 옆에는 ‘흥지문’으로 잘못 표기된 CCTV 설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홍지문 내부에는 분말소화기 2개가 갖춰져 있어 화재가 날 경우 즉시 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말소화기는 문화재를 손상시킬 수 있어 수소화염화불화탄소 성분 등 가스로 불을 끄는 청정소화기로 교체하는 추세다. 흥인지문에도 분말소화기 2개가 있었지만 이런 이유로 지난해 2월 청정소화기로 교체됐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숭례문 화재 이후 막대한 예산을 투입, 곳곳에 CCTV를 설치했지만 문화재 근처에서 술을 먹거나 담배를 피울 경우 곧바로 제재하는 등의 운용 시스템은 갖추지 않았다”며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행정”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인력과 예산의 한계로 흥인지문 서울문묘 등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부터 신경쓸 수밖에 없었다”며 “사각지대에 있는 일부 문화재도 문제가 생길 경우 빨리 대처할 수 있도록 경비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