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명백한 불법”-민노 “행정착오”… 미등록 계좌로 100억대 당비 운영 공방
입력 2010-02-10 21:17
민주노동당이 최근 3년간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지 않은 미신고 계좌를 통해 100억원대의 당비를 운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노당은 “행정 착오”라고 해명했으나 검찰과 경찰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민노당 관계자들의 사법 처리 가능성을 열어 놨다.
민노당의 미신고 계좌는 경찰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조합원의 정치활동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10일 “민노당 명의로 K은행에 개설된 미신고 계좌에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00억원 정도가 선관위에 등록된 민노당 공식 계좌로 흘러들어갔다”고 밝혔다. 미신고 계좌는 민노당이 매달 일반 당원의 당비를 납부 받는 자동계좌이체(CMS) 통장이다.
경찰은 2008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55억원이 미신고 계좌에서 선관위 등록 계좌로 빠져 나간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55억원 가운데 수천만원은 전교조, 전공노 조합원이 보낸 당비나 후원금으로 보고 있다.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오병윤 민노당 사무총장이 회계책임자로 재직한 이후에는 전교조, 전공노 조합원 140명이 700만원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한 뒤 미신고 계좌의 입금 내역을 확인하고, 부당한 당비 납부 등을 추가 확인할 방침이다. 특히 검찰과 경찰은 미신고 계좌를 이용해 당비를 받은 것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판단, 수사 결과에 따라 민노당 회계책임자나 당 지도부 등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민노당은 “해당 계좌는 국민승리21(민노당 전신) 시절인 1998년 개설된 것으로 미신고 사실을 몰랐고, 불법성도 없다”고 반박했다.
오 사무총장은 서울 문래동 민노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계좌로 입금된 당비는 매월 6차례 당 공식 계좌로 재입금돼 당 운영자금으로 사용됐다”며 “2008년 8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당비로 입금된 53억72만원은 선관위 등록 계좌로 1원의 오차도 없이 전액 재입금됐다”고 말했다.
미신고 계좌는 맞지만 입금된 돈을 투명하게 등록 계좌로 옮겼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 경우 일부에서 제기된 미신고 계좌를 활용한 돈세탁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민노당은 15일 해당 계좌를 선관위에 등록하고 미신고에 따른 행정처분을 받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미리 신고하지 왜 뒤늦게 신고하느냐”고 말해 사법처리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미신고 계좌는 법률 위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미신고 계좌가 있는지 몰랐다”며 “신고된 계좌에 ‘CMS 당비’라고 찍혀 있어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엄기영 박유리 이제훈 기자 eom@kmib.co.kr